핵발전소 예정 부지에 세워진 골프장
설계자 피트 다이의 성은 ‘Dye or Die’?
2010년 벙커 빠진 더스틴 존슨의 악몽

콜러리조트 아메리칸 클
콜러리조트 아메리칸 클럽

욕조회사로 시작해 최고급 휴양리조트를 만들기까지

위스콘신 주 밀워키 시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차를 달리다 보면 북미 대륙의 심장부, 오대호(五大湖) 중 하나인 미시간 호수 변에 위치한 ‘콜러(Kohler)’라는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은 고급 욕조 및 세면대 브랜드로 유명한 ‘콜러’의 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존 마이클 콜러(John Michael Kohler)가 1873년 세운 주물회사는 창립 10년 차에 만든 신제품 하나로 유명해졌다.  이 제품은 다름아닌 법랑(琺瑯)욕조. 주물로 만든 말 여물 통에 에나멜을 입혀 욕조로 만든 게 히트를 친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은 월터 콜러 시니어(Walter J. Kohler Sr.)는 콜러 社의 사업 영역을 확장해 다양한 가전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발전시켰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 노동자들에게 쾌적한 생활 환경을 제공하려 노력했던 그는 ‘노동자는 노동의 대가인 임금을 받을 권리와 함께 여가를 누릴 권리도 있다.’라는 신념으로 아메리칸 클럽이라는 회사 기숙사를 세웠고, 이 건물은 백 년이 훌쩍 넘은 지금 미국 10대 골프 리조트 중 하나인 데스티내이션 콜러 리조트의 5성급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미시간 호수와 세보이건(Sheboygan) 강변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 자리잡은 데스티내이션 콜러 리조트에는 4개의 개성 넘치는 코스가 있다.  미시건 호수 변의 휘슬링 스트레이츠(Whistling Straits) 코스와 아이리시(Irish) 코스, 세보이건 강가의 블랙울프 런(Blackwolf Run) 리버 코스와 매도우 밸리(Meadow Valley) 코스가 있는데, 4곳 모두 난이도 높은 코스를 설계하기로 악명 높은 피트 다이(Pete Dye)의 작품이다. 그 중 블랙울프 런 리버 코스는 한국 골프역사에 중요한 장소로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 이곳 강가에 살았던 인디언 부족 추장의 이름을 따라 만든 블랙울프 런 리버 코스는 1998년 US 위민스 오픈에서 박세리 선수가 우승했던 곳이다.

블랙울프런 리버코스
블랙울프런 리버코스

피트 다이의 걸작, 휘슬링 스트레이츠 코스

귀한 찻잎도 처음보다는 두 번, 세 번 우려냈을 때 깊고 섬세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한다.  이런 진리는 골프 코스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난생 처음 마주하는 코스를 플레이 할 때는 ‘쓴 맛’이 강할 수도 있다.  특히나 피트 다이의 코스처럼 난이도 높은 해저드로 가득한 코스에서 설계자의 의도와 홀의 특성을 간파하여 전략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골퍼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수로 가득한 라운드 후 씁쓸함을 지울 수 없음에도 한 번 더 도전하고 픈 욕망을 일으키는 코스가 있다. 이런 코스는 두 번, 세 번 반복해 경험했을 때 비로소 떫은맛, 신맛, 짠맛 심지어 단맛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훌륭한 설계와 시공을 통해 태어난 명문코스란 초보자로부터 프로까지 다양한 수준의 골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한가지 정답만이 존재하는 코스는 이런 즐거움을 제공하지 못한다. 단타자에게는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장타자에게는 멋지게 넘겨 쳤을 때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하는 해저드가 공존하는 코스, 매 홀 다양한 공략 법을 요구하여 상상력을 자극하는 코스는 평생을 반복해 쳐도 지루하지 않다. 이런 전략성이 뛰어난 코스가 4개나 있는 콜러 리조트는 골프 매니아의 천국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4개 코스 중 단연 최고로 손꼽히는 곳은 PGA 챔피언십을 3번이나 치른 휘슬링 스트레이츠(Whistling Straits)코스이다. 미시간 호수의 잔잔한 파도와 창공을 나는 갈매기의 풍경은 마치 스코틀랜드의 링크스 코스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한때 핵 발전소의 유력한 부지로 거론됐던 땅을 이토록 멋지게 탈바꿈 시킨 설계자 피트 다이의 상상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피트 다이의 걸작, 휘슬링 스트레이츠 코스
피트 다이의 걸작, 휘슬링 스트레이츠 코스

코스 곳곳에 산재한 크고 작은 벙커들은 무려 13,126대의 초대형 트럭이 퍼 나른 엄청난 양의 모래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코스 내에 벙커가 몇 개나 되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코스관리자들도 항공사진을 보며 벙커 개수를 파악하려 했으나 중도에 포기했다고 한다. 일반 벙커와 황무지 벙커(Waste bunker: 일반 벙커와 달리 클럽을 지면에 댈 수 있고, 바닥을 스치는 연습 스윙도 가능하다)를 구별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대회의 룰 적용을 위해 황무지 벙커와 일반 벙커를 구별해야 하는데, 이번 주 라이더 컵에서는 어떤 방식을 택할 지 궁금해진다.  지난 5월, 키아와 아일랜드 오션 코스에서 열렸던 PGA 챔피언십에서는 이를 구별하는 대신 모든 벙커에서 클럽을 바닥에 댈 수 있는 파격적인 룰을 적용했다.  공교롭게도 오션 코스와 휘슬링 스트레이츠 코스 모두 피트 다이의 작품이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벙커

2010년 이 곳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 마지막 날 마지막 홀에서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장면이 벌어졌었다. 두 타 차 선두를 달리던 더스틴 존슨의 마지막 홀 티 샷이 팬들이 모여 있던 러프로 향했다. 당시 TV 중계를 보고 있던 필자도 더스틴 존슨이 황무지 벙커로 보이는 모래 밭에 빠진 공 뒤로 클럽헤드를 대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더스틴 존슨은 자신의 티 샷이 빠진 곳이 벙커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갤러리가 밟아서 파헤쳐진 흙바닥으로 착각했던 것이었고, 코스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는 있을 수 있는 불운이었다.  그는 안타깝게도 경기를 마친 후 2 벌 타를 받았고, 그 결과 황금 같은 메이저 대회 우승 기회를 날려 버렸다.

2010 PGA챔피언십
2010 PGA챔피언십

이번 주말 라이더 컵 중계를 통해 보게 될 휘슬링 스트레이츠 코스의 벙커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자연의 모습과 같다. 이는 결코 표피적인 성형을 통해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바닷가의 간척지나 폐 염전, 버려진 채석장 부지를 골프 코스로 조성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이미 손상된 자연, 유효기간이 지나 용도 폐기된 땅을 골프코스로 바꾸는 과정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골프 코스로서의 기능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표피적인 성형은 또 하나의 유효기간이 있는 상품을 만들 뿐이다. 손상된 자연을 복원하고 단절된 생태 축을 연결하며 그 안에 골프 코스를 자연스레 앉힐 수 있는 설계자의 창의력이 필요하다.

2021 라이더 컵 개최지
2021 라이더 컵 개최지

2021 라이더 컵 트로피는 누구의 품으로?

2년에 한 번씩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벌어지는 최고의 골프 이벤트인 라이더 컵은 94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역대 전적은 미국이 26승 14패 2무로 월등하지만, 3년 전 프랑스 파리의 르 골프 내셔널에서는 유럽팀이 17 ½-10 ½로 압승했다.  당시 미국팀은 낯선 경기장의 좁은 페어웨이와 깊은 러프로 고전했고, 팀원 간의 불협화음까지 겹쳐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라이더 컵에서는 팀 웍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최저 타수로 승자를 결정하는 스트로크 플레이 방식이 아니라, 가장 많은 홀을 이긴 팀이 승리를 가져가는 매치 플레이 방식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12명과 유럽을 대표하는 12명은 3일 간 총 28개의 매치로 승부를 가린다. 금요일과 토요일에 벌어지는 총 16개의 포섬(Foursome)과 포볼(Fourball) 매치는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경기 방식이다.  포섬은 2인 1조로 두 팀이 경기를 하는데, 두 명이 한 개의 공을 번갈아 치기 때문에 얼터닛 샷(Alternate shot: 번갈아 치는 샷)이라고도 부른다.  포볼은 2인 1조의 두 팀 모두 각자의 공(총 4개)을 플레이 하여 가장 잘 친 스코어로 승패를 가리기 때문에 베스트 볼(Best ball)이라고도 부른다.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는 총 12개의 일대일 경기가 펼쳐진다. 이런 특성 때문에 대진표를 짜고 팀 결속력을 다지는 캡틴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휘슬링 스트레이츠 코스를 플레이하고 나서 불평을 하는 이들에게 피트 다이는, ‘어렵기는 뭘, 팝콘 까먹기 정도밖에 안되는 코스인데.  하지만 팝콘이 목구멍에 걸릴 수도 있긴 하지.’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 라이더 컵에선 누구 목에 팝콘이 걸리게 될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포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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