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지막 라운드는 어디서?
좋은 코스란 변별력이 높은 코스
초보·상급자 구분 없이 즐거워야

 

오거스타 내셔널 아멘코너 12번 홀. /골프다이제스트
오거스타 내셔널 아멘코너 12번 홀. /골프다이제스트

미국 골프다이제스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중, “당신에게 단 한 번의 골프 라운드가 남아 있다면, 어디를 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남자는 1위 오거스타 내셔널, 2위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코스, 3위 페블 비치를 뽑았다.

오거스타는 마스터즈 대회가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회원제 클럽이라 골퍼라면 누구나 ‘도대체 뭣이 그리 대단하길래?’ 라는 질문을 안고 한 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코스는 600년 전 골프가 시작된 원산지이다 보니 뿌리깊은 역사성과 코스 곳곳에 숨겨진 뛰어난 전략성이 높이 평가받는다. 진정한 골프 매니아라면 꼭 도장을 찍으러 가야하는 곳이다.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코스 18번 홀과 스윌컨 브리지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코스 18번 홀과 스윌컨 브리지

페블 비치는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해안 절벽위에 위치해 수려한 절경을 자랑하는 럭셔리 리조트 코스이다. 투숙객이 아닐 경우 카트 비용까지 625달러, 우리 돈으로 한 라운드에 70만원을 내야 하니, 대다수 서민 골퍼들에겐 버킷 리스트에 들어 있는 꿈의 코스이다.

남자들의 선택과 달리 여성 골퍼들은 페블 비치를 1등으로 꼽았다. 아름다운 경관과 풍요로운 리조트 환경이 그들의 감성코드를 자극한 결과인 듯하다.  세 곳 모두 각자 특색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 만들어진 코스임과 동시에 메이저 대회를 수도 없이 치를 수 있었던 뛰어난 전략성을 자랑하는 코스이다. 

페블비치 골프링스/ 페블비치리조트
페블비치 골프링스/ 페블비치리조트

코스에 숨겨진 ‘전략성’이란 무엇인가?

세계적인 코스 설계가인 미국의 로버트 트렌트 존스(1906-2000)는 설계자의 역할을 ‘파가 어렵고 보기가 수월한 홀’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벙커나 물과 같은 해저드를 페어웨이와 그린 주변에 배치하고 잔디면의 굴곡을 다양하게 하여 난이도를 높이는 것은 설계자가 할 수 있는 일종의 트릭이다.  반대로 골퍼의 관점에서 설계자가 코스 곳곳에 숨겨 놓은 함정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맞서 대처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로 ‘코스 매니지먼트 전략’이다.  능력 있는 설계자일수록 다양한 전략을 요구하는 홀을 디자인할 수 있고, 상상력과 기량이 뛰어난 골퍼일수록 그런 홀들을 플레이 할 때 최선의 전략을 세워 대처하는 것이다.

좋은코스란 리드미컬하고 변별력이 있는 코스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들을 평가할 때 ‘변별력’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시험이 평이하고 쉬운 문제 일색이라면 최상위권과 상위권, 상위권과 중위권의 차이를 구별하기 힘들어진다. 반면 최고 난이도로만 구성될 경우, 최상위권을 제외한 상위권과 중위권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열 여덟 개 홀이 진행순서에 따라 합리적이고 다양한 난이도로 구성되어야 하고, 개별 홀들을 플레이 할 때도 골퍼들의 다양한 수준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변별력 있는 샷을 요구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티잉 그라운드부터 그린까지의 공간이 해저드 하나 없이 편평한 좌우 대칭형의 홀이라면 골퍼의 수준을 구별할 수 있는 변별력이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같은 공간에 셀 수 없이 많은 벙커와 워터 해저드를 심어 놓고 그린을 작고 어렵게 만든다면 초보자들은 퍼팅을 해 보기도 전에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좋은 코스란 초보자부터 상급자까지 모두가 즐겁게 플레이 할 수 있는 코스다. 이는 마치 자꾸 들어도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음악을 듣는 경험과 같다.  음악의 장르와는 별개로 곡이 전개되는 방식에 스타일이 있고 클라이막스가 있으며 자연스레 흥얼거리게 하는 매력적인 멜로디가 있는 그런 곡이 우리의 플레이리스트에 저장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다시 말해 좋은 코스란 티에서 그린까지 홀이 전개되는 방식에 다양성이 있고 변별력이 있으며, 18홀을 경험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클라이막스가 전반과 후반에 각각 한 개 이상 존재하며, 다시 가보고 싶은 욕구를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곳이다.

재즈의 거장 마일즈 데이비스의 명반 ‘Kind of Blue’와 같은 골프 코스가 있다면 그곳이 어디라도 당장 달려가고 싶을 것이다.  몽환적이고 리드미컬한 첫 곡 ‘So What’에 이어, 경쾌한 ‘Freddie Freeloader’로 넘어간 후 관능적인 추상화로 가득한 갤러리 안을 산책하는 듯한 ‘Blue in Green’, 긴장감 가득한 ‘All Blues’의 클라이막스를 지나, 하루를 마감하는 석양 노을을 바라보는 듯한 ‘Flamenco Sketches’로 마무리하는 골프코스가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

계획이 있는 플레이에 대한 보상

2019년 제83회 마스터즈 토너먼트는 타이거 우즈의 기적 같은 컴백으로 전세계 골퍼들이 열광했던 경기였다.  그 장면을 현지에서 목격했던 필자는 오거스타 내셔널의 뛰어난 전략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타 대회처럼 엄청난 길이의 러프로 난이도를 높일 필요가 없는 오거스타는 홀이 진행되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구질의 샷을 마스터 한 자만이 우승할 수 있는 코스였다.

2019 마스터즈에서 우승한 타이거 우즈. /USA TODAY Sports
2019 마스터즈에서 우승한 타이거 우즈. /USA TODAY Sports

마스터즈 경기를 관전하기에 앞서 아틀랜타 시 외곽에 위치한 유서 깊은 코스에서 라운딩을 했다. 지난 주말 넬리 코다가 우승했던 2021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이 열린 아틀랜타 애슬레틱 클럽의 하이랜드 코스였다. 워터 해저드가 곳곳에 있었던 파크 랜드 코스였고 플레이하기에 만만치 않았다는 것 외엔 TV 중계를 통해 본 홀들은 의외로 기억 속에 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홀이 TV화면 속에 등장하자, 기억은 순식간에 2년 전 그곳으로 날 데려갔다. 당시는 국내 모 대기업에 재직했던 시절이었고, 계열사 대표이사 2명과 그룹에서 소유하고 있는 회원제 코스의 총지배인과 동행했던 해외 골프대회 벤치마킹 출장이었다.

500야드 파5에서 나만의 플레이를 하고자 세컨 샷을 워터 해저드 앞 페어웨이로 레이 업하여 홀 컵까지는 100미터를 남겨 놓은 상황.  동반자 세분은 모두 워터 해저드에 한 차례씩 빠져 4타만에 그린에 올라왔고, 나는 피칭 웨지로 컨트롤 샷을 하여 2미터가 조금 안되는 버디 퍼트를 남겨놓았다.

‘무슨 퍼트인고?’ 라는 상사의 질문에, 
‘버디 퍼트입니다.’ 라고 대답하자, 순간 내게 날아온 엄중한 한마디.  
‘당신 그 퍼트 넣을 수 있겠어?

잠시 후 나는 소신대로 플레이했고 ‘그 퍼트’를 넣어 홀 컵 주위의 공기를 일순간 썰렁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나는 회사를 나오게 됐다.

아틀란타 애슬레틱 클럽 하이랜드코스 18번 홀. /아틀란타 애슬레틱 클럽
아틀란타 애슬레틱 클럽 하이랜드코스 18번 홀. /아틀란타 애슬레틱 클럽

골프는 계획과 소신을 갖고 플레이 했을 때, 그리고 그 계획을 제대로 실행했을 때 어김없이 보상을 준다. 작고 하얀 골프공과 나, 이 둘 사이에는 진실만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골프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번 주말 리듬감과 변별력이 있는 좋은 코스에서 계획이 있는 플레이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길 기원한다.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포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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