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영 씨(45)의 집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집안 어디를 둘러봐도 TV가 없다. 저녁을 먹고 가족은 모두 흩어진다. 남편은 안방에서 낚시나 스포츠 관련 유튜브를 보고 중학생인 두 아들은 각자 자신의 방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양씨도 설거지를 끝낸 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에 들어간다. 가족 누구도 TV를 찾지 않고 각자 할 일을 한다.전미혜 씨(53)의 집안도 비슷하다. 남편은 안방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고등학생 딸은 자신의 방에서 공부하고, 중학생인 아들은 자신의 방에서 스마트폰으로 쿠키런 게임을 한다. 4명의 가족
대학생 노유림 씨(20)가 카카오톡에 들어가자 첫 화면에 생일인 친구 목록이 떴다. 9월 30일은 같은 과 동기의 생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생일 때 동기로부터 2만2500원어치 선물을 받아 비슷한 가격으로 사줘야겠다고 생각하곤 고민 끝에 2만2000원 하는 치킨 기프티콘을 선물했다. 결제를 진행하니 출금 알림이 왔다. '[카카오 선물하기] 출금 2만2000원 잔액 1만1000원' 잔액이 생각보다 없어 한 달간의 계좌 거래 명세를 확인해 보니 이번 달 용돈 30만원 중 5만4700원을 카카오톡 선물하기 상품을 구매하는 데에 쓰고 있
서울특별시 은평구 소재의 한 원룸에 거주하는 김민식 씨(76)는 최근 부쩍 고민이 늘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서 평소보다 높은 도시가스비와 난방비가 나올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김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아들에게 용돈을 받는 것도 이제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최근 퇴직한 아들은 당분간은 수입이 없을 예정이라 김씨에게 이전만큼 용돈을 주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내가 일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젠 뽑아주는 곳도 없다." 김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김씨는 지난겨울 침대에서 내려오다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뼈에 금이 갔다
합격이 간절한 면접, 친구의 결혼식, 소중한 사람과의 데이트.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한다. 하지만 입을 수 있는 옷이 없어 그러한 고민조차 사치인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체장애인이다.휠체어 생활을 하는 이들이 시중에 유통되는 상의를 입으면 말려 올라가 허리가 보이고, 바지는 밑위가 짧아 허리춤이 자꾸만 내려간다. 가방은 휠체어 손잡이에 걸면 흘러내리고 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줍지 못 한다. 그래서 지체장애인 대부분은 펑퍼짐한 운동복을 입고 가방 대신 장바구니를 휠체어에 주렁주렁 달고 다닐 수밖에
현관문을 들어서자 젊은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여러 켤레의 신발들이 눈에 띈다. 현관문의 바로 오른쪽에 있는 방에 들어가니 영락없는 20대 대학생의 공간이다. 많은 전공 서적과 화장품, 널려있는 옷가지들, 침대 위의 인형은 방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런데 다음으로 들어가 본 방도 다를 것이 없다. 그다음도, 그다음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는 이 집에는, 20대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방이 마치 복사,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똑같이 세 개가 있었다.높은 월세를 감당하기 힘든 청년들은, 이른바 '함께 살기
"카드값이 이렇게 많이 나왔다고" 주부 김한별 씨(29)는 카드 명세서에 적힌 금액에 놀랐다. 어디서 썼는지 기억나지도 않는 큰 금액이 곳곳에 적혀있었다. 이내 계좌는 카드값 지출로 텅 비워지고 말았다. 김씨는 "남편의 외벌이 월급과 빡빡한 가계를 생각해서 계획적이고 현명한 소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8월부터 '현금 챌린지'를 시작했다. 현금 챌린지는 일주일 혹은 한 달 치 예산을 정하고, 정해진 만큼의 현금으로만 소비하며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는 전략이다. 김씨는 현금을 보관할 수 있는 다이어리 형태의 '바
김건우 씨는 대학교 복학 후 3년간 상도동의 자취방에서 통학했다. 김씨는 졸업을 앞두고 있고 요건 역시 모두 채웠지만 졸업 후 바로 취업하지 못할 것을 염려해 졸업을 1년 미뤘다.취준생이 된 김씨는 올해 하반기 50여 군데의 기업에 지원했다. 인턴 두 개, 정규직 두 개의 서류 전형에서 합격했으나 최종면접은 모두 떨어졌다. 탈락의 후유증으로 환절기 독감을 앓는 동안 어느새 하반기 공채가 끝나버렸다.하지만 다행히 김씨는 25세로 여전히 취업 시장에서 젊은 나이다. 2023년 9월 인크루트에서 실시한 897명의 구직자, 대학생, 직장인
인천 서구 연희동에 사는 김종순 씨(76)는 지난여름 동생의 권유로 맨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김씨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을 에워싼 '아시아드 맨발 산책길'이 김씨의 운동 장소다. 주 경기장 앞 흙길이 걷기 좋다는 소문을 들은 동네 노인정 사람들이 지난 7월 다 같이 나와 산책을 한 게 발단이었다. 반년도 안 돼 이들은 회원 수가 300명이 넘는 어엿한 '인천 아시아드 경기장 맨발 걷기 동호회'가 됐다.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 모임을 긍정적으로 본 인천시설공단은 맨발 이용자와 일반 이용자 모두를 위한 마사토 길을
대학생 윤서현 씨(23)는 얼마 전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한 학기 동안 함께 과제를 하고 밥도 먹으며 친하게 지낸 친구에게 전화할 일이 생겼는데 번호를 몰라 애를 먹은 것이다. 이에 윤씨는 “요즘은 전화보다는 카톡이나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연락하니까 전화번호가 없다는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대학생 김지아 씨(23)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교회에서 친해진 동생과 처음으로 교회 밖에서 약속을 잡았다. 김씨는 변경된 약속 장소를 알려주기 위해 연락처 앱에 들어가 친구의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하지만 번호는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김씨는
옷값이 상승하며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취업 전후 젊은이들의 지갑 사정이 곤란해졌다. 이들은 첫 출근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정장을 사려다 비싼 옷값에 당황한다. 저렴한 옷으로도 충분히 개성을 뽐낼 수 있던 새내기 시절과 다르게, 이 시기의 젊은이들은 개성보다는 괜찮은 품질의 정장과 같은 단정한 옷차림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이제 겨우 첫 월급을 받은 젊은이들에게는 나날이 오르는 옷값과 사회생활에 필요한 정장 마련이 부담스럽게 다가온다.공인경 씨(22)는 2023년 하반기에 공공기관 인턴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회사에서
중·고등학교, 대학교에는 학생이지만, 선수인 특별한 학생선수들이 있다. 이들은 일반 학생들과 달리, 학생 신분으로 운동을 하며 선수로 대회에 출전한다. 그러나 학생과 선수의 경계에서 선수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부상, 기량 부족, 선후배 관계 등 각자의 이유로 운동을 그만두고 일반 학생의 길을 택한다. 그러나 그동안 운동을 하느라 일반 학생들과 생겨버린 학업 격차는 극복하기 힘들고, 새로운 진로 탐색에 대한 정보도 부족해 애를 먹는다. 문제는 이 학생들을 위한 학교 차원의 지원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용산고등학교 농구
저녁 8시, 김주영 씨(21)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서울에서 혼자 지내는 딸의 안부를 묻는 부모님의 전화다. 전화는 항상 "밥은 먹었어?"라는 말로 시작한다. "어, 잘 챙겨 먹었어"라고 말하는 김씨의 표정이 밝지 않다. 말과 다르게 밥을 굶거나 부실하게 먹은 적이 많았다.이는 김씨만의 일이 아니다. 많은 대학생이 끼니를 거르거나 편의점 음식 등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있다.대학생들의 식단과 식습관을 파악하기 위해 2023년 11월 20일부터 24일까지 총 11명의 대학생이 먹은 음식의 종류와 섭취 시간을 조사했다. 이후 개별 면담을
12월 4일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SK미래관 1층 라운지의 총학생회 선거 기표소 앞에는 공부할 자리를 찾는 학생들 수십 명이 서성였다. 시험 기간을 맞아 라운지는 북적였지만 바로 뒤편 선거에 참여하는 사람은 뜸해 총학생회 지역선거관리위원 학생들은 휴대전화를 보며 무료함을 달랬다.고려대 재학생 김강민 씨(23) 또한 투표소를 보고도 관심이 생기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사실 그는 2019년에 입학한 이래 총학생회가 없는 학교를 여러 해 경험했다.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는 2020학년도부터 3년간 총학생회를 정상적으로 구성하지 못했다. 2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부엌으로 향한다. 약통에서 하얀 알약을 꺼내 삼킨다. 이번엔 다른 약통에서 노란 알약을 꺼내 삼킨다. 그렇게 6개의 알약을 연이어 먹는다.몸이 안 좋은 노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초년생 이주원 씨(26)가 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방법이다. 회사에 출근해도 이씨의 영양제 섭취는 계속된다. 또 다른 약통 6개가 이씨의 사무실 책상에 놓여있다. 종합비타민, 오메가3, 칼슘, 마그네슘, 밀크티솔, 아연, 아르지닌 등을 포함해 이씨가 하루에 먹는 영양제의 종류만 무려 12가지다. 이씨는 "지금부터 꾸준히 섭취해야
서울 노원구에 있는 S 대학. 일요일인 12월 2일 오후 7시, 한 건물만 어두운 거리를 환하게 밝혔다. 조용한 캠퍼스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이 건물 근처에만 많은 학생들로 소란스러웠다. 해당 건물엔 24시간 개방된 열람실이 있기 때문이다. 기말고사가 다가오면서 많은 학생이 시험 준비를 위해 커피나 에너지 음료, 간식거리를 든 채 바쁘게 열람실로 들어가고 있었다.필자는 열람실 밖 1층에 위치한 건물 라운지에 들어가자마자 메스꺼운 냄새와 심한 잡음에 당황했다. 대략 8개의 테이블이 마련된 이곳에서 6명의 학생이 작은 원형 책상에 모여
두꺼운 눈썹은 산처럼 치켜 올라가 있고, 눈동자는 흰자를 빠져나올 정도로 부릅떠 있다. 가로로 길게 난 입은 고르지 않은 치아를 잔뜩 보이며 소리치고 있고, 코에는 주근깨가 촘촘히 박혀있다. 마구 그어진 직선의 머리카락과 크레용으로 쭉쭉 뻗어나가며 엉성하게 칠한 표면에서는 날카로움이 보인다. 거칠지만 부드럽고 불안하지만 단단한 종이 위에 다양하게 표현된 작품은 작가 신민 씨(39)의 종이조각이다.작가 신민은 점토로 원형을 만들고 그 위에 기름에 절인 종이를 10겹 이상 붙인 뒤, 연필로 스케치하고 크레용으로 색칠한다. 강하고 오래가
한국 웹툰은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웹툰 산업 규모는 4배 이상 증가하여 약 1조5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큰 성장을 보였다.한국 웹툰은 한국에서 소비되는데 그치지 않고 네이버의 Webtoon, 카카오의 Tapas등 해외 웹툰 플랫폼을 통해 동아시아, 북미 등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웹툰 '마스크걸', '무빙'은 드라마로도 제작되며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었다.어느 산업이 그렇듯, 큰 성과를 나타내고 있는 웹툰 산업에도
붙박이장 한쪽에 옷들이 가지런하게 걸려있다. 꽃무늬 치마, 초록색 나시, 줄무늬 반소매 티셔츠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대학생 여채은 씨(21)는 총 8벌의 옷을 고작 만원에 사 왔다. "엄밀히 말하면 사 온 건 아니죠. 바꿔온 거죠." 그렇게 말하는 여씨의 얼굴에 뿌듯함이 감돌았다.여씨는 '21% 파티'의 열혈 참여자이다. 비영리법인 다시입다연구소가 주최하는 '21% 파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안 입는 옷들을 다른 사람의 옷과 교환하는 이른바 '공유 옷장' 행사다. 그 이름은 '옷장의 옷 중 21%는 한 번도 입지 않은 채 방치되
당시 67세였던 정성기 씨는 97세 치매 노모를 홀로 모신 지 9년 반이 되던 때 자기가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됐다. 그간 빠진 치아만 14개, 수면 부족, 신경쇠약, 급성폐렴."이러고 어떻게 사셨어요?" 정씨에게 의사가 던진 첫마디였다. 아픈 아버지를 돌보는 청년 이주빈 씨(25)도 "간병 중 얼굴에 이유 모를 파란 반점이 생기고 머리 통증으로 고통을 겪었다"고 밝혔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가족 돌봄 속에서 간병하는 가족들은 정작 '나'를 돌보는 것을 잊고 있었다.이주빈 씨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원인 모를 뇌 질환으로
김은아 씨(27)는 2020년 대학생이었을 무렵 만난 지 불과 한 달 남짓 된 남자 친구로부터 대뜸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은 언젠가 하겠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직장인인 남자 친구와 달리 아직 어린 그에게는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나 아직 졸업도 안 했는데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라고 말했던 그는 졸업 후 남자 친구와 헬스트레이너로 같은 직장에서 일하며 동거를 시작했다. 직장에서 가정까지 24시간을 붙어 살면서 일과 집안일로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사실상 신혼 생활이었다.하지만 그는 남자 친구를 '대화를 통해 맞춰갈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