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의 천국, 키아와 아일랜드 리조트
골프장, 사바나 초원 닮아···숨은 DNA 자극
나이·성별 떠나 3대가 모여 실력 겨뤄볼까?

테니스의 슈퍼스타 애거시와 나달이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 것인가?  가상 게임이 아닌 실제 코트에서 지금 이 시간 붙는다면 말이다.

안드레 애거시 vs 라파엘 나달

테니스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되는 가정이라 할 것이다. 애거시는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스타였고 나달은 현재 가장 잘 나가는 현역 선수이기 때문이다. 애거시가 1970년생이고 나달이 1986년생이니 16살 차이가 난다. 애거시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현재의 그는 나달에게 체력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대적이 안되는 상대임이 분명하다.

골프가 재미있는 스포츠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5월 셋째 주에 있었던 미 PGA 챔피언십에서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 벌어졌다. 대회 최종일 마지막 팀으로 경기를 시작한 필 미켈슨의 나이는 50세 11개월.  그와 함께 경쟁한 선수는 메이저 4승을 자랑하는 1990년 5월생 브룩스 코엡카였다.

한 타 차 선두로 일요일 경기를 시작한 미켈슨은 초반 접전 이후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후반전을 잘 관리했고, 심지어 16번 홀에서는 이 홀에서 기록된 대회 최장 타인 366야드에 달하는 드라이버 샷을 날렸다. 그는 결국 스무 살 어린 코엡카를 1타 차로 누르고 골프 역사상 최고령의 메이저 챔피언에 등극했다.

용호상박의 세계적 무대에서 어린 조카뻘 되는 선수를 제치고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스포츠.  아마추어의 세계에서도 나이와 관계없이 실력을 겨뤄볼 수 있는 운동이 바로 골프인 것이다.

2021 PGA 챔피언십의 격전지, 키아와 아일랜드 리조트 오션 코스

2021 PGA 챔피언십은 미국 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키아와 아일랜드(Kiawah Island) 오션 코스에서 개최됐다. 필자가 국내의 모 잡지에 미국의 골프 리조트에 관한 칼럼을 연재했던 2003년, 미국을 대표하는 10대 골프 리조트로 소문난 키아와 아일랜드 골프 리조트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는 뉴욕 맨해튼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던 시절이었고, 주말에 골프를 치던 인근 뉴저지 주의 퍼블릭 골프장들은 대부분 지형이 완만한 환경에 건설된 공원과 같은 파크 랜드 코스였다. 그런 내게 이곳은 마치 야생의 사파리 투어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골프장이 날 것 그대로의 자연 속에 담겨 있었다.

아침 일찍 첫 팀으로 골프백을 메고 걸어 나간 1번 홀에서 페어웨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뱀을 목격했다. 멀찍이 떨어져 조심스레 다음 홀로 옮겨 가니 거북이 한 마리가 느긋하게 코스 한 켠을 횡단한다. 코스 안팎에 자생하는 오크 나무 위에는 순백의 야생조류가 둥지를 틀고 있고, 그 너머로 부서지는 하얀 파도가 보는 이의 눈을 시리게 했다. 골프장이 자연과 하나되어 낮에는 인간이 잠시 놀고 가는 생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처음 보는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키아와 아일랜드 리조트 오션 코스 /키아와 아일랜드 리조트
키아와 아일랜드 리조트 오션 코스 /키아와 아일랜드 리조트

문득 골프를 치러왔다는 사실마저 잊게 만드는 이곳의 매력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이는 코스를 만들기 전부터 주변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고 최대한 보존하고자 한 개발자와 설계자의 의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공적인 요소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카트 도로에서도 발견된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대신 해변의 모래 원지반을 단단히 다져 만든 카트 도로는 자연상태의 웨이스트 벙커(waste bunker)로 연결되고 그린 주위로 가면 일반 코스에서 볼 수 있는 벙커와 하나가 된다.  이런 이유로 2021 PGA 챔피언십에서는 웨이스트 벙커와 일반 벙커의 경계가 애매한 이유로 모든 벙커에서 바닥에 클럽을 대고 연습스윙을 할 수 있는 파격적인 로컬 룰을 적용했다.

인간의 DNA에 녹아 있는 골프사랑, 사바나 가설(Savannah Hypothesis)

지난 20년 간, 전 세계의 다양한 코스들을 다녀봤지만 아직까지도 키아와 아일랜드 리조트의 오션 코스와 같이 야생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은 없었다. 그린 위에 꽂힌 깃대만 없다면 골프장이 아니라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아프리카의 대초원이라고 해도 믿을 것만 같았던 코스였기에 훗날 어느 책에서 ‘사바나 가설’이란 이론을 접했을 때 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었다.

미국의 동물학자이자 행동심리학자인 고든 오리언스(Gordon Orians) 교수는, “골프코스는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게 된 이 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아프리카 대초원의 환경과 매우 유사하다”라고 말했다.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는 환경이란 무엇일까?’ 이는 행동심리학자들이 오랜 기간 연구해 온 주제인데, 오리언스 교수는 밀림의 나무 위에서 생활했던 유인원 시기를 뒤로하고 두발로 서서 걷기 시작한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의 대초원의 환경에 적응했을 때 가장 행복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현 인류의 DNA에는 수 백 만년 전 우리의 조상들이 가장 좋아했던 환경에 대한 선호도가 녹아 있다는 것이다. 사냥할 먹이감의 위치를 파악하고 맹수들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대 초원의 풍경.

이 기억을 현대의 도시인들도 본능적으로 느낄 때가 있는데, 그 때가 바로 골프코스에서라는 것이다. 언덕 위에 위치한 티잉 그라운드에서 나지막이 펼쳐진 녹색의 페어웨이를 내려다보며 느끼는 쾌감. 골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 개 더 생긴 건 아닐까?

3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운동

필 미켈슨이 세운 최고령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을 훨씬 더 큰 차이로 능가할 수 있었던 기회는 2009년 스코틀랜드 서해안의 링크스 코스인 턴베리(Turnberry)에서 있었다.

미국의 노장 골퍼 톰 왓슨은 당시 60세의 나이로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며 전세계 골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최종일 경기에서 35살이었던 스튜어트 싱크와 연장 4홀 접전 끝에 아쉽게도 우승을 내주었지만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노련한 플레이는 많은 시니어 골퍼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었다.

골프는 3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다. 80대 아버지가 50대 아들과 20대 손자와 함께 나란히 걸으며 서로 동등하게 스포츠맨십을 발휘할 수 있는 스포츠가 또 어디 있을까? 더 많은 골퍼들이 가족과 함께 골프를 통해 행복과 건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한반도에도 키아와 아일랜드 오션 코스와 같이 야생 생태계와 공존할 수 있고 골프를 통해 환경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골프장이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

키아와 아일랜드 리조트 오션 코스 /키아와 아일랜드 리조트
키아와 아일랜드 리조트 오션 코스 /키아와 아일랜드 리조트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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