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로 고향 진주에서 3년 차 귀농생활을 하고 있다. 농사일은 어릴 적에 어머님이 하시던 일을 주말이나 방학 때 내려와서 도와드렸던 기억이 다다. 서울에서 작은 텃밭 가꾸던 그 실력으로 고향 땅에 내려와서 농사를 짓는다는 일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나의 판단과 행동이 무지였는지 용감했던 건지 구별이 잘 안 간다.나는 늙어서 도시에서 할 일 없이 빈둥빈둥 지하철이나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 매우 싫었다. 그래서 귀촌해서 벼농사나 지으면서 노후를 보내려고 낙향을 결심했는데 행운이었는지 아내가 동행해 주었다. 아내는 다니던 직장도 정리
모내기는 논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남녘 지방에서는 주로 5월 20일경 시작하여 6월 20일경이면 끝이 난다. 귀농 3년 차인 나는 올해는 못자리를 직접 만들지 않고 육묘장에 맡겼다. 65세 이상 농민에게는 육묘장에서 모를 사면 지자체에서 모 구매비에서 일부 금액을 지원해 준다고 하였기 때문이다.작년과 재작년에는 우리 내외가 직접 모 싹을 틔우고 모판을 만들어 모내기를 했다. 모내기하기 한두 달 전(4월 중순이나 말경)에 볍씨를 골라서 소금물이나 요즘은 벼 소독약이 나오는데 소독약을 섞은 물에 깨끗이 씻어서 다시
코로나19가 끝나고 마스크도 사라지는 세상이 되었다. 동창들의 모임도 활성화되고 여러 취미 활동 모임이나 산악회 모임도 부활이 되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재경 총동문회 모임도 부활하여 6월 3일 축제를 연다는 연락이 왔다.내가 서울 동기 모임의 총무를 15년 이상 해오다 보니 자연히 친구들이 나를 쳐다본다. 모내기 철이라 농촌에서의 일정이 무척 바쁘게 돌아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볼 욕심으로 서울행을 결심하게 되었다.동네에서 출발하는 7시 50분 버스를 탔다. 평소 동네로 들어올 때 이용하던 버스는
지난해 11월 2일 호박 모종을 하우스 두 동에 심었다. 호박은 심고 나서 약 한 달 보름 정도 되면 출하를 시작한다. 12월 10일경부터 호박을 따기 시작하여 4월 10일경 마무리했다. 지난 겨울에는 호박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이곳 호박 시설재배 농민들은 꽤 재미를 보았다. 겨울 농사로 호박 농사가 끝나면 호박을 한 차례 더 심거나 재배자의 취향에 따라서 수박이나 열무를 심기도 하고 일부는 오이를 심는다. 우리는 봄에 일찍 오이를 심기 위해서 아예 한 동을 비워두었다.우리가 키우는 호박은 주키니 호박인데 이 녀석은 추위에도 대
손자 같은 내 친구 홍시가 떠나고 두 달이 지났다. 지난 2월 8일 새벽 2시경 밖에 나가보니 홍시가 문을 빼꼼히 열고 나간 흔적이 보였다. 약 닷새 전에도 밤에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던 적이 한 번 있었는데 나는 홍시를 안고 ‘홍시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가서 자고 오면 안 된다’라고 타일렀었다.홍시가 우리 곁을 떠나기 약 보름 전부터 이웃에 사는 고양이 친구를 사귀었는데 친구가 나타나면 잠시 우리 곁을 떠나서 친구와 돌아다니면서 놀기도 하였지만 나는 속으로 환영하였다. 홍시가 나가서 돌아오지 않자 내 고향 여자 친구 옥이
손자 같은 내 친구 홍시가 떠나고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나도 아내도 문을 묶지 않고 홍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얼마 전부터는 하우스 문을 굳게 닫는다. 작년 6월에 우리 곁에 와서 채 1년도 되지 않아 떠나갔다.어릴 적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이 있었다. 홍시는 나하고도 또 이 세상과도 인연이 이 만큼이었나 보다. 우리는 가지고 있던 것은 놓치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고 싶어 한다. 즉 모든 것에 집착하고 그 집착이 괴로움이 되고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이제 내 마음속에서 홍시를 홀가분하게 내보
정월 대보름날 일요일 아침에 새 이장이 전화했다. “형님! 오늘 오후에 달집 짓는 것 좀 도와주세요!” 나는 새 이장의 요청에 흔쾌히 승낙하고 낫과 톱을 챙겼다. 요즈음은 사찰에서도 정월 대보름날 달집을 짓고 산사 음악회를 연다. 여기저기 지자체에서도 홍보 차원에서 달집을 많이 짓는 모양이다.벌써 40년이 넘고 50년이 다 되어 가는 추억인데, 고향을 떠나기 전 이 동네에서 마지막으로 달집을 짓던 때 생각이 났다. 당시에, 농촌에서 정월 초하루부터 정월 대보름날까지는 농민들의 휴가 기간이었다.초하룻날 새벽에 부모님께 먼저 세배를 드
2022년 연말이 다가오자 마을에서 이장 일을 보고 계시는 형님께서 식사를 한번 하자고 불렀다. 식사 자리에 가서 보니 이장님과 친구 일우와 후배 상근이가 미리 와서 같이 앉아 있었다. 향어회에 술도 한잔씩 나누면서 올해 농사일에 고생이 많았다며 서로 덕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장님이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사유를 설명했다.“상근아, 너는 다음에 할 수 있잖나.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마을 이장을 나에게 양보해 주라.”그러자 상근이는 이번에 이장에 나서는 이유를 설명했다.“5년 전에 제가 이장이 되고 마을 통장을 집어던지고 했을
내가 고향으로 쉽게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고향에 죽마고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명절이 다가오거나 기제사가 돌아오면 일 년에 몇 번씩 어머님을 모시러 고향에 왔다. 어머님을 모시고 서울로 올라갔다가 서울 우리 집에서 2~3개월 머물다 다시 모시고 내려왔는데 고향 집에 와서는 하루나 이틀 정도 묵고 갔다. 그때마다 친구는 흔쾌히 달려와서 술동무가 되어 주었다.어머님이 요양원에 들어가시자 나와 아내는 고향의 빈 집을 지키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은 내려와서 2~3일 정도 머물다가 서울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2020년 혹독한 겨울에도 아
식물은 식물만의 특성이 있고 성질이 있다. 식물은 자기 몸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들을 끌어들이려는 성질이 있다. 나무들은 그가 선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더 받기 위해서 키를 키우거나 가지를 넓게 펼친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는 뿌리들이 또 얼마나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인가?동물도 각각 저들만의 특성이 있다. 사나운 짐승인 사자나 호랑이는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고 살아간다.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지 않으면 굶어 죽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냥에 성공할 확률은 약 20%라고 한다. 즉 다섯 번을 사냥하여 겨우 한 번 성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들을 사랑한다고 한다. 자신이 잘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못된 짓을 많이 한 사람도 자기 자식이나 손자 손녀들은 사랑스럽고 애정을 넉넉히 가지리라.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탐욕심이 가득 찬 사람이 자신의 가족들은 아끼고 사랑한다고 하자. 그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그 당사자도 밉지만 그가 사랑하는 그 가족들도 당연히 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반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며 살아온 사람은 우선 그 마음부터가 편안하고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따뜻하게 배어 있을 터이다. 그리고 베풀었던 이가
인생은 과연 무엇일까?내가 9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새벽에 급작스럽게 이 세상을 떠나셨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는 급히 병원으로 모셨으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었을 텐데···.아버지가 떠나시고도 내 마음에서는 아버지를 놓지 않고 있었다. 언젠가는 꼭 돌아오실 것만 같아 늘 대문 밖에서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환각(幻覺)에 빠지곤 했다.아버지는 겨울에 돌아가셨는데 49재를 지내고 다음 해 봄에 농사철이 돌아왔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일꾼들이 많아서 우리 집은 늘 잔치를 치르는 집 같았다.아버지가 안 계시니 집안일만 하시
몇 년 안에 고향으로 내려갈 것이라 작정을 하였는데 그것도 준비가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시로 고향을 들락거리며 고향 집을 둘러보고 어머님을 모시고 왔다 갔다 하고 친구와 만나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지만 정작 고향에 정착한다는 일은 큰 용기가 있어야 했다.처음에는 그냥 귀촌해서 노후를 살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평생을 고향 땅에서 사시던 어머님이 계시면 그것도 어렵지 않은 일인데 만약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고향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살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농사일에 바쁜 고향 사람들 속에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는 임종을 맞이해야 한다. 태어나서 어릴 적에는 부모님과 형제들의 울타리 속에서 대체로 안온하게 지내는 편이다. 앞으로 긴 인생의 여정을 살아갈 준비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분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긴 시간 동안 학습을 하면서 미래에 자신의 직업을 준비해 가는 것이다.학업을 마치고 결혼을 하다보면 가정이 생기고 그 책임자가 된다. 자식들이 생기고 한 가정을 꾸려가야 하는 처지가 되고 보면 가족들의 삶을 영위하게 하는 자금을 벌기 위해서 부모들은 사투를 벌인다. 긴 시간을 자식들을 키우고 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