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골프장···100년전 서울 효창원 자리
영국인 H. E. 던트(Daunt)가 코스 설계 맡아  
망국의 역사 딛고 사랑받는 스포츠 되기까지

 

한반도 최초 효창원 골프장에서 한 시민이 퍼팅을 하고 있다. /출처 『한국골프 100년 1900-2000』
한반도 최초 효창원 골프장에서 한 시민이 퍼팅을 하고 있다. /출처 『한국골프 100년 1900-2000』

100년 전 6월1일 한반도에 최초의 골프장이 세워졌다. 지금의 서울 한복판 용산 효창공원 부지에 2322야드 9홀 규모의 골프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서양에 문을 닫아 걸어 은자의 왕국이라 불렸던 조선,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효창원 골프장과 그 배경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파헤쳐본다.

영국골프의 태동과 부흥기

필자가 영국에서 골프코스 설계를 공부할 때, ‘우리나라에서 골프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600년 골프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세계 최초의 골프장, 세인트 앤드류스의 올드코스를 걸으며, 마치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고 할까?

골프가 시작된 스코틀랜드의 유서 깊은 코스에 가보면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은 홀 옆을 쏜살같이 달리는 기차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골프대회인 디 오픈이 처음 개최된 프레스트윅 골프클럽이 그렇고, 포스티지 스탬프 홀이라 불리는 우표장만큼 작은 그린으로 유명한 로열트룬 골프클럽이 그러하다.  스코틀랜드 해안에 위치한 소도시에는 예외 없이 바닷가에 골프장이 있다.

1920년대 런던의 골프 포스터. / 아시아 골프인문학연구소 제공
1920년대 런던의 골프 포스터. / 아시아 골프인문학연구소 제공

마을 중심에서 시작하여 밀보리를 재배하는 경작지를 지나 해변으로 걸어 나가면 목동들이 양과 염소를 방목해 기르는 목초지가 나타난다.  모래톱이 굽이치는 변화무쌍한 지형 위, 가축들이 풀을 뜯고 있는 러프 옆에서 작은 공을 때려 공중에 띄우려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15세기 영국에서 골프가 시작된 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풍경인 것이다.  

19세기 말 런던을 중심으로 해안선을 따라 국토 전역으로 철도가 뻗어 나간 후, 영국의 철도회사들은 대중들에게 앞다투어 기차여행을 홍보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런던북동철도회사(LNER)는 형형색색의 삽화를 그려 넣은 여행 홍보 포스터로 골퍼들을 유혹했다.  해변의 아름다운 링크스 코스와 호텔 그리고 그곳까지 골퍼들을 실어 나르는 기차가 환상의 조합을 이루며 스코틀랜드 동서해안의 골프를 부흥시킨 것이다.

골프의 종주국인 영국에서 100년 전 유행했던 ‘기차로 떠나는 골프여행’이 한반도에 최초의 골프장을 만들게 된 원인이었다는 것을 필자가 알게 된 것은 영국에서 귀국하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였다.

조선의 골프

20세기 초 지구의 반대편, 일제 치하였던 조선의 수도 경성에서 영국인들과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 조선철도국 소속이었던 일본인 안도 마타사부로(安藤又三郞)는 중국의 해변도시 다롄의 야마토 호텔의 부속시설인 호시가우라 골프장을 방문한 후 이를 벤치마킹하려 했다. 조선철도국이 운영 중인 조선호텔의 부속시설로 골프장을 만들어 더 많은 여행객을 유치하고자 한 것이다.

조선철도국이 운영한 옛 조선호텔 모습. /국가기록원
조선철도국이 운영한 옛 조선호텔 모습. /국가기록원

그는 호텔과 가까운 곳의 국유지를 임대하였고 당시 일본 고베에 거주하면서 일본 아마추어 골프선수권대회의 챔피언을 지낸 영국인 H. E. 던트(Daunt)에게 코스설계를 맡겼다.  

일본 최초의 골프클럽인 고베 골프클럽(1903년 설립)의 회원이기도 했던 던트가 조선에서 겪은 체험은 우연히도 1923년 간행된 『Inaka or Reminiscences of Rokkosan and other Rocks』라는 책 속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고베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산악등반 모임의 회고록이었던 이 책에서 던트는 “은자의 왕국에서의 골프 (원제 Golf in the Hermit Kingdom)”라는 제목으로 조선 최초의 골프장 건설과정을 아래와 같이 기술했다. 

“1919년 5월 만주철도주식회사의 초청으로 처음 경성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중략> 송림이 울창하고 잡초가 무성한 효창원 일대를 손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울창하게 자란 큰 나무들을 베어 넘기고 페어웨이를 닦으며 코스 모습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9홀을 제대로 만들기에는 모자라는 부지인 데다 여기저기 묘까지 산재해 있었다. 묘를 파 없애면 되는 문제이지만 조선인들이 절대로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코스를 만들 수 있을까에 우리는 심혈을 쏟았다.”

효창원 골프장을 만든 배경에는 망국의 아픈 역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정조의 맏아들인 문효세자(文孝世子)의 무덤이 있던 왕실 묘역이 조선총독부 철도국 산하 호텔의 수입을 늘리려는 일본인의 요청으로 파헤쳐진 것이다. 1910년 국권찬탈과 함께 대한제국은 이씨 왕조의 가문이라는 뜻의 이왕가(李王家)로 격하되어 불렸고, 그 재산을 관리하던 일본 궁내성 관할 기구인 이왕직(李王職)에서 왕릉터를 골프장 부지로 임대할 수 있도록 허가한 것이다.

이렇듯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효창원 골프장은 개장 후 불과 2년 만에 코스부지가 공원으로 계획되면서 1924년 또다른 왕릉 터인 청량리의 의릉(懿陵)으로 이전되었다.  하지만 왕릉 터가 골프장부지로 유용(流用)된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청량리 골프장은 그로부터 5년 후인 1929년 지금의 서울어린이대공원이 위치한 뚝섬의 유릉(裕陵) 터로 또다시 이전되어 군자리 골프장이라 불리게 되었다.  

효창원 골프장 설립 후 100년

100년 전 이 즈음, 총독부 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한반도 최초의 효창원 골프장과 그 후 일제 치하에 설립된 골프장들은 굴곡진 한반도의 역사 속으로 모두 사라졌다. 한국전쟁 이후 1954년 재건된 군자리 골프장 마저도 1972년 어린이대공원 건설을 위해 부지를 내어 주고 자취를 감추었다.

효창원 골프장이 생긴 이후 43년째 되는 1964년,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골프장인 한양컨트리 클럽이 개장됐다.  그 후 2021년 현재까지 57년 간 전국에는 550개 이상(18홀 기준)의 골프장이 건설됐고 골프 인구는 300만을 넘어섰으며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했던 2020년 골프장 이용객 수는 4673만명에 달했다.

또한, 대한민국의 골프는 양적인 성장에 그치지 않고, 세계 프로 무대에서 남녀 모두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한 골프는 더 이상 재벌이나 정치가들만 즐겼던 70, 80년 대의 사치성 놀이가 아닌 국가적인 스포츠, 대중 문화의 하나로 발전하고 있다. 역사 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한국의 골프산업은 미래를 어떻게 계획해야 할까?  

참고 문헌
2016년, 『한양컨트리클럽 50년, 서울컨트리클럽 60년사』
2021년, 『한국 골프의 탄생』, 지은이: 손환, 펴낸 곳: 민속원 

‘마이 골프 레시피’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골프산업과 대중골프문화를 풍요롭게 할 다양한 컨텐츠와 아이디어를 다루고자 합니다. 동서양의 골프역사, 골프라이프스타일, 골프비지니스에 대한 스토리와 함께 골프를 더욱 즐겁게 해 줄 코스 공략법과 같은 다양한 정보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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