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가지 특이 체질과 두가지 일반 체질
벌칙형, 영웅형, 우회형, 레이업, 오픈형
아놀드 파머 "神 90%, 인간이 10% 기여"

히로익 사우스케이프 15번홀 /사우스케이프 리조트
히로익 사우스케이프 15번홀 /사우스케이프 리조트

조선 후기의 한의학자 이제마는 사상의학 이론을 통해 사람을 크게 네 가지 체질로 나누고 각자의 특성에 따라 효과적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정립했다. 체질에 따라 장기의 기능, 타고난 성향과 재주, 몸의 형태와 얼굴의 모양 등이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를 이해하면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최선의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코스에도 체질이 있다. 사상의학과 마찬가지로 골격과 생김새에 따른 코스공략법이 있어 이를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준비와 실천을 할수록 실수를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평소 골프가 잘 되지 않아 마음의 병을 얻은 사람들에게는 특효 처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골프와 사상의학

사람의 체형과 얼굴 생김새를 잘 관찰하면 그의 성격과 행동을 예상해 대처할 수 있듯이 골프장도 홀의 생김새와 성격에 따라 공략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자, 그렇다면 골프에는 몇 가지 체질이 있을까? 크게는 다섯가지 특이 체질과 두가지 일반 체질이 있다.  5가지의 특이 체질은 벌칙, 영웅, 우회, 레이업과 오픈이다.  골프가 시작된 영국과 미국의 코스 설계가들이 수 세기에 걸쳐 정립해 온 이론인데, 아래에서 간략히 이 다섯가지 특이체질에 대해 설명하겠다.

#벌칙형(Penal)
그린까지 전진하기 위해서는 해저드를 넘기는 방법 외에는 다른 선택권이 없는 홀이다.  초보자들에게는 다소 가혹한 홀일 수도 있으나, 완벽하게 맞은 샷이 해저드를 넘어 그린에 안착했을 때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홀이기도 하다.  골퍼라면 한 번쯤 꼭 도전하고 싶은 미국 플로리다 주의 TPC 소우그래스 17번 홀이 벌칙형 홀의 대표적 사례이다.  아일랜드 그린이라 불리는 이곳은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시그니처 홀이기도 하다.

벌칙형 홀 TPC 소우그래스 17번홀 /골프닷컴
벌칙형 홀 TPC 소우그래스 17번홀 /골프닷컴

#영웅형(Heroic)
플레이 방향에 사선으로 놓여 있는 해저드를 넘겨, 더 멀리 건너 칠수록 그린까지의 거리가 짧아지는 홀이다.  여기서는 티 샷의 거리뿐 아니라 방향도 중요하다. 거리가 짧거나 방향이 틀어져 해저드에 빠져 벌타를 먹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너무 안전하게 공략하다가 잘 맞은 티샷이 페어웨이 너머 러프나 벙커 또는 아웃오브바운드 지역에 빠질 수도 있는 까다로운 성향을 갖고 있다.  남해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의 15번 홀이 국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히로익 홀이다.

#우회형(Detour)

우회형 킹스반스 골프링스 6번홀. /킹스반스 골프링스
우회형 킹스반스 골프링스 6번홀. /킹스반스 골프링스

우회형 홀은 플레이 지역 중앙에 벙커와 같은 해저드가 있다.  바로 이 해저드가 그린까지 짧은 직선 방향의 공략루트와 긴 우회로를 명확히 구분한다.  장타자라면 짧은 루트를 택해서 그린공략 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반면, 안전하게 돌아가는 루트를 선택하면 그린까지 남은 거리가 길어지게 된다.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세계 100대 코스인 킹스반스 골프링스 6번 홀이 좋은 사례이다.

#레이업(Lay-up)
해저드가 가로막고 있는 그린이나 페어웨이를 직접 공략하는 대신 그 앞의 넓은 공간에 다음 샷을 치기 편한 위치로 공을 짧게 보내야 하는 홀이다.  주로 설계자들이 짧은 파4나 파5 홀에서 그린 공략을 어렵게 하는 방법이다.

레이업 홀은 벌칙형 홀과 비슷한 골격이지만 한가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둘 다 그린까지 가는 길에 넘겨야 하는 해저드가 있지만 레이업 홀의 경우 해저드 직전의 페어웨이로 공을 보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옵션이 있다. 반면에 벌칙형 홀은 모 아니면 도, 무조건 해저드를 넘겨 그린을 공략해야 한다.  국내에도 레이업 홀의 대표적 사례가 제주도에 있다.  파5 홀에서 세컨 샷을 레이업하여 안전하게 그린을 공략할 수 있는 클럽 나인브릿지의 18번 홀이 그곳이다

레이업 제주 나인브릿지 18번 홀. /게리리스본
레이업 제주 나인브릿지 18번 홀. /게리리스본

#오픈형(Open)
티잉 그라운드에서 그린까지 아웃 오브 바운드를 제외한 특별한 해저드가 없는 홀이다.  정확히 똑바로 치기만 하면 그린 공략에 어려움이 없는 홀이라서 상급자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과거에는 이런 유형을 프리웨이 스타일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국내에는 60, 70년대에 건설된 코스들에서 이런 유형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오픈형 홀도 충분히 재미있고 도전할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곳이 있다.

바로 600여년전 골프가 시작된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코스의 18번 홀이다.  챔피언십 티에서 357야드 밖에 되지 않는 이 홀은 그린 앞에 도사리고 있는 죄악의 골짜기(Valley of sin)라 불리는 페어웨이 굴곡이 있어 절대로 만만히 볼 수 없다.  2015년 디 오픈에서 우승한 타이거 우즈는 밸리오브신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18번 홀 그린 왼쪽에 있는 1번 홀 티잉 그라운드 방향을 3번 우드로 공략하는 전략을 택하기도 했다. 

오픈형 홀 올드코스18번 홀 /오상준
오픈형 홀 올드코스18번 홀 /오상준

위 다섯가지 특이 체질 외에 나머지 일반 체질은 첫번째, 좌측이나 우측으로 휘어진 도그레그(Dog Leg)홀과 두번째, 티잉 그라운드부터 그린까지 일직선으로 전개되는 홀 중 특이 체질과는 다른 홀들이 있다.  이런 일반 체질들은 따로 분류하여 정의하기보다 실전에서 임상 실험을 통한 다양한 대처법이 필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만의 임상일지를 축적해야 한다.

새로운 골프장과의 설레는 미팅

새로운 골프장에 가는 것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경험과 같다. 18홀을 도는 것은 한 사람을 18번 다른 장소에서 마주치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잘 가꿔지고 안정된 첫 인상이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유지되면서도 가끔씩 기억에 남는 재미와 특색이 있어 다시 만나고 싶은 코스가 있는가 하면, 만날 때마다 시종일관 같은 모습에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한 곳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오르막 내리막의 기복이 심하고 난이도가 높아 긴장해야 하지만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하는 팔색조와 같은 매력이 있는 곳이 있는 반면, 중구난방으로 남과의 차별화만을 추구하다 개성없이 난잡하기만 한 곳도 있다.

골프의 황제 아놀드 파머는 ‘신이 창조한 자연 환경이 90퍼센트를 차지하고 그 위에 인간의 손으로 10퍼센트를 더해서 탄생하는 것이 골프장이다’라고 했다.  코스를 선택하고 플레이함에 있어 자연 환경과 설계자의 의도가 만들어 내는 다섯가지 특이 체질을 잘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다면 실수를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이는 현명한 골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포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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