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은 엄친아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
오랜 전통과 사회적 가치 인정받아야
올림픽 열린다면 한국의 명문 어딜까?

2020 도쿄 올림픽의 골프경기장인 카즈미가세키 컨트리클럽
2020 도쿄 올림픽의 골프경기장인 카즈미가세키 컨트리클럽

‘엄친아’ 와 ‘명문가의 자제’

능력이나 외모, 성격, 집안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한 남자를 일컬을 때 흔히 ‘엄친아’라는 단어를 쓰곤 한다. 이는 ‘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 말로 주로 부모가 ‘누구 네 집 아들은 이러 저러 하다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 라고 자식을 꾸짖을 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명문가의 자제’라는 단어가 쓰이는 경우는 다르다. 우리가 소위 ‘명문’이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경우는 그 대상이 오랜 전통과 사회적 가치를 지닌 업적을 축적해 왔을 때이다.

엄친아는 개인이 잘 난 경우이지만 훌륭한 명문가의 자제라고 불리는 경우는 개인의 능력을 넘어 집안의 가풍과 업적이 오랜 기간 축적되어 온 결과를 포함한다.

단지 좋은 학벌이나 엄청난 재산을 가졌다고 명문가 출신이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골프장도 아무 곳이나 명문 코스, 명문 클럽이라 불르지 않는다.

골프장이 명문이 되기 위해서는 그곳의 전통이 타 코스의 모범이 되어 추종할 만한 가치를 지녀야 하고 골프가 많은 이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사회적 책임까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골프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영국과 미국의 대표적인 골프장과 클럽 중에 이런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골프의 룰을 제정하고 디오픈을 주최하며 아마추어 골퍼 인구 증진에 힘쓰고 있는 R&A가 위치한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코스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퍼블릭 코스이지만 600년 골프의 역사와 함께 한 최초의 코스이자 코스설계의 교본과 같은 역할을 하여 명문 코스로 불리는데 이견이 없다.

미국의 오거스타 내셔널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클럽으로 유명하지만 해마다 마스터즈 경기를 개최하며 아시아 퍼시픽 아마추어 챔피언십을 후원하는 등 골프산업 증진을 위해 통 큰 기부를 해왔다.

전통과 사회적 책임의 실천이 명문이 되기 위해 축적해야 할 무형의 가치라면, 이런 가치가 실현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곳은 코스이다.  코스가 수준 이하라면 명문이라 불릴 수 없다.

세계적인 코스를 만드는 필수불가결한 3가지 요소

명문 코스를 만들기 위해 있어야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600년 골프의 역사에서 단 한차례의 예외도 없이 3가지로 귀결되어 왔다.

첫째, 골프에 대한 철학과 심미안이 있는 오너
둘째, 훌륭한 골프장이 들어설 수 있는 탁월한 코스부지
셋째, 변함없는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설계를 할 수 있는 코스 설계가

명문이 되기 위한 유무형의 가치를 실현하려면 흔들림 없는 의지가 있는 오너가 필요하다. 이런 오너가 제대로 된 땅을 고를 줄 알고 거기에 명품 코스를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설계가를 선정하여 일임했을 때 비로소 세계적인 코스가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이웃나라 일본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 명문코스를 만든 사례가 있었다.

1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일본의 명문 코스

찰스 휴 앨리슨(C.H. Alison)
찰스 휴 앨리슨(C.H. Alison)

1903년 일본 최초의 골프장인 고베 골프클럽이 설립된 이후 일본 골프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일이 1930년 12월 1일에 일어났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코스 설계가인 찰스 휴 앨리슨(C.H. Alison)이 일본에 초청된 것이다. 그가 머물렀던 3개월 간 일본의 코스설계 역사가 다시 씌여졌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가 남긴 발자취는 일본 골프코스의 수준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렸다.

지금까지도 2,000개가 훌쩍 넘는 일본의 코스 중 미 골프매거진의 세계 100대 코스 순위에 오른 곳은 단 두 곳인데, 두 곳 모두 앨리슨의 손에 의해 1930년 대에 탄생한 곳이다.

고베 근교의 히로노(39위)와 시즈오카에 위치한 카와나 호텔의 후지코스(56위)가 바로 그곳이다.  이 외에도 앨리슨의 설계가 구현된 곳은 여러 곳인데, 그 중 하나가 이번 주 열리고 있는 2020 도쿄 올림픽의 골프경기장인 카즈미가세키 컨트리클럽의 동코스이다.

2020 도쿄 올림픽 골프코스

2020 도쿄 올림픽의 골프경기장인 카즈미가세키 컨트리클럽의 동코스.
2020 도쿄 올림픽의 골프경기장인 카즈미가세키 컨트리클럽의 동코스.

카즈미가세키 컨트리클럽의 동코스는 1929년 일본인 킨야 후지타와 시로 아카보시가 설계하여 개장했다. 두 명 모두 미국 유학시절 골프에 입문했고 코스 설계에 지적인 관심을 갖게 된 인물들인데, 이 중 시로 아카보시는 국내 최초의 정규 18홀 코스였던 군자리 코스를 설계한 로쿠로 아카보시의 형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들의 설계는 회원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고, 결국 1930년 겨울 영국의 전문가를 초빙하기에 이른다.

앨리슨은 개장한 지 2년도 채 안 되는 코스를 탈바꿈 시켰는데, 그의 비결은 벙커였다. ‘앨리슨의 벙커’라고 불린 거대하고 위협적인 벙커는 코스의 난이도와 변별력을 높였고, 이 때 그와 함께 설계에 참여했던 일본인 기술자들은 훗날 일본 코스 설계의 대가가 되었다.

명문 골프코스도 끊임없는 자기개발의 노력 없이는 그 명성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카즈미가세키 컨트리클럽은 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후 2014년에 미국의 세계적인 설계가 톰 파지오를 초청하여 이스트 코스를 개조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코스관리를 쉽게 하기 위해 그린을 두개로 나누어 번갈아 사용하던 오랜 관리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앨리슨이 최초 설계했던 한 개의 그린으로 복원했다.

PGA투어 선수들의 기량을 테스트할 수 있도록 전장을 7500야드로 늘렸고 페어웨이 벙커의 위치도 변경하여 난이도를 높였다. 그린은 난지(煖地)형 잔디에서 한지(寒地)형 잔디인 벤트그래스로 변경하여 그린의 스피드를 향상시켰다.  새롭게 탄생한 카즈미가세키 동코스가 세계최고의 선수들에 의해 어떻게 플레이 될 지 기대되는 한주간이 될 것이다.

한국의 명문 코스

신설 골프장의 수준이 뛰어나 ‘엄친아’와 같이 남들의 부러움을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엄친아’가 ‘명문’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훈장은 남이 달아줬을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훈장을 가슴에 달고 으스대는 것과 같은 촌극이 없듯이, 스스로를 명문이라 부르는 것만큼 어이없는 행동도 없다.

훌륭한 코스를 건설하고 골프가 지닌 사회적 책임을 끊임없이 실천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을 때 비로소 명문 코스, 명문 클럽으로 존경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세심히 들여다본다면 대한민국의 명문 코스, 명문 클럽은 과연 어디인가?

5년 전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 112년 만에 정식종목으로 재개된 골프는 올림픽을 위해 신설된 코스에서 열렸다.  미국의 길 핸스(Gil Hanse)가 설계한 올림픽 골프코스(Campo Olimpico de Golfe)는 리우데자네이루 도시 외곽의 해안 자연보호구역에 세워졌고 올림픽 이후에는 대중제 골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골프 대중화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브라질에서 올림픽을 개최한 명품코스를 대중골프 발전을 위해 개방한 결정이 칭찬할 만하다.

미국의 길 핸스(Gil Hanse)가 설계한 브라질 리우 올림픽 골프코스
미국의 길 핸스(Gil Hanse)가 설계한 브라질 리우 올림픽 골프코스

미래의 어느 날 한반도에서 다시 한번 올림픽이 열리게 된다면 골프경기는 어디서 열리게 될 지 궁금하다. 현존하는 코스 중에 선정될 수도 있고, 앞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코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그때가 온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진정한 명문 코스에서 멋진 경기가 개최되길 바란다.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포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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