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난 제비들이 삼월삼짇날에 맞춰 다시 옛집을 찾아왔다.그런데 어쩐다냐, 집이 사라졌다. 앞집 노인 부부는 작년에 집을 보수하고 제비집이 있던 곳을 실외 거실로 만들었다. 안주인이 대청소하며 제비집을 빗자루로 빡빡 털어내곤 속이 시원하다며 웃었다. 황당한 제비 부부의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 맞는지 모르지만 ㅎ)이 재밌고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 한참을 전깃줄에 앉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화하던 제비 부부가 작심을 했다.“어쨌든 우리는 여기서 6개월 여정을 완수한다.” 응원군을 데려온 듯 다른 제비 부부도 옆에서
봄이 왔다. 마당엔 꽃들이 앞다투어 봉오리를 터트리고 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벌들은 꽃향기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고 여기저기 콕콕 쑤시며 돌아친다.벌을 보노라니 벌 키우는 집 마당에서 본 풍경이 생각난다. 한 녀석이 제 몸무게보다 더 큰 화분을 양발에 매달고 돌아와 벌통 입구에 짐을 털더니 벌러덩 쓰러졌다. 열심히 노동한 일벌의 생애에 감동이 왔다.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그 녀석이 잠시 후 일어나 벌벌 기어 제 집으로 들어간다. 이번엔 가장의 애환을 보는 것 같아 뭉클한데 한 지인이 수컷의 열정을 일상에 엮어 흉을 보니 모두 고개
봄꽃 축제가 시작되었다. TV 화면에 보이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은 봄꽃보다 더 화사하다. 오래전 의성 산수유축제를 함께 다녀온 친구가 올해도 산수유를 보러 가자며 내려왔다. 그에게 가장 기억나는 여행을 꼽으라면 유럽도 미국도 아닌 사람이 꽃보다 더 예뻤던 의성 산수유축제를 꼽는다. 나도 고생한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각나 웃음이 났다.그 당시 여행 분위기도 낼 겸 근처에 오래된 고택스테이를 온라인으로 예약했다. 트레킹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문자로 받은 대문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큰 대문으로 들어갔다. 딱 한 팀만 예약받는
지인 부부와 검무산을 산행하러 집을 나서니 좁은 도로 곳곳이 매설 공사 중이다. 교통 담당 근로자가 봉을 흔들어 보이지 않는 건너편과 무전기로 차를 정지시키고 다시 보내기를 반복한다. 산행을 끝내고 오는 길에 지인이 마트 앞에 차를 세웠다. 따뜻한 음료를 봉지에 가득 담아 집 근처 매설 공사 현장 근로자에게 전하며 반갑게 인사를 하셨다. 그와 동료라고 했다.차 안에서 그들 부부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능력 있는 지인의 남편은 정년퇴직하고도 다니던 계약직 일을 몇 년 전에 그만두었다. 쉬는 것도 몇 년 지나자 지루해지고 성격도
딸의 폰 번호가 뜨며 벨이 울린다. 귀가가 늦으니 막내를 좀 봐달라는 부탁 전화다. 지렁이체로 제 이름만 겨우 쓰는 아홉 살 셋째 손자는 또래보다 발달이 늦어 부모의 걱정이 크다. 집에 들어가니 형들은 학원 간다며 다 나가고 혼자 남아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듯 TV 리모컨을 어찌나 빨리 돌려대는지 눈이 어지럽다. 아이가 안쓰러워 슬쩍 말을 걸었다.“막둥아, 할머니랑 비행기 타고 여행 갈까?”“네, 비행기 너무 좋아요.”혼자 떨어져 본 적 없는 아이는 형이랑 같이 가는 거로 생각한다. 긴 방학이고 나도 2월까진 시간이 있어서 제주에서
가끔은 국수를 말아 동네 어르신들을 대접하면 농담 삼아 나에게 국수 장사를 하라고 부추긴다. 오가는 손님이 없어도 그들이 매상을 책임질 거란다. 하하.나이 드신 어른들에게 툭툭 반말하고 예의도 없는 나를 좋게 봐주시고 자주 불러주니 고마운 동네다.문득 오래전 시골 살 때 분홍 집 가게주인을 닮아 가는 나를 발견한다. 시골이라 오가는 낯선 손님 하나 없어도 늘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던 곳, 담배도 팔고 술도 팔고 노인들에겐 가끔 공짜 국수도 삶아주던 작은 가게다.어느 날 도시에서 살던 중년 여자가 마을에 홀연히 나타나 삼거리 모퉁이 빈집
전화벨이 울린다. 아침 먹자는 이웃 전화다.두 사람은 밥상을 사이에 두고 이거 먹어봐, 저거 먹어봐 하며 어색하게 허둥댄다. 평상시 그들 부부의 호칭은 ‘어이~, 보소’인데 오늘은 조금 격상되어 ‘여보, 당신’으로 부르고 어색한 존댓말로 대화한다.내가 여행 간 사이 큰 전쟁이 또 터졌었나 보다. 어른이 되어도 감정이란 녀석은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다가 상대방의 성냥 같은 말 한마디로 활활 불붙는다. 일흔 아흔을 넘어도 투덕거릴 힘이 있으면 청춘이다. 적당한 투덕거림은 활성비타민이니까.먼저 수저를 놓은 남편이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
얼마 전 초등학생인 손녀가 친구들과 버스를 탄 인증샷과 함께 문자가 왔다.“여기 버스 안이야. 나 버스 탔어. 크크”부모랑은 타봤어도 자기들끼리 타본 건 처음이라 뿌듯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나보다. 동생에게도 담에 데려간다며 호들갑을 떨었다.방학 중인 오늘, 둘은 버스를 타고 구 시장(안동의 중심도시)에 가서 순대랑 떡볶이를 사 온다며 의기양양하게 손을 잡고 나갔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난 후, 드디어 딩동~하고 문이 열렸다. 세상에나, 머리에선 김이 솔솔~ 벌겋게 언 두 녀석의 얼굴이 떡볶이 꼴이다. 어른들이 장하다 대단하다 호들갑
한 해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내 곁을 스쳐 간 2023년의 모든 일상과 사건들이 과거가 되어 버렸다. 세월의 속도가 나이 숫자 같다는 말이 실감 난다. 지난 일 년을 되돌려보니 후회보다 보람된 시간이 더 많다. 몇 년 전부터 연말에 가서 정산할 나의 계획을 연초에 설정해서 그 길로 걸어가 보았다.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은 쉽고 재밌었다. 그러다 보니 몇 년째 마음만큼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하하)**미리 보는 나의 10대 뉴스(2023년 1월에 설정하여 12월에 정산한 나의 열 가지 성공뉴스는 이랬다.)1.
주말인 오늘, 딸네 아이들을 봐주기로 했다. 이틀 후면 딸의 생일이라 지인에게서 얻은 뮤지컬공연 티켓으로 생색을 냈다. 학교 학원 숙제가 통과되는 할머니 호출이 무조건 반가운 애들이다. 영화를 볼까 수영장을 갈까 설레발치더니 첫째가 찜질방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거기로 정했다.안동엔 없어서 멀리 영주까지 가 찜질과 사우나를 하고 근교 축제장으로 돌아다녀도 시간이 남았다. 망아지처럼 달리는 아이들을 따라가기가 버겁다. 업고 다닌 것도 아닌데 오후가 되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깨와 허리가 뻐근하다. 두 녀석의 더부룩한 머리가 눈에 잡혔다.
초등학생이던 어린 시절, 마당 넓은 한옥엔 다섯 가구가 세 들어 살았다. 마당엔 아이들이 북적거렸다. 그 집엔 키도 작고 덩치도 작은 같은 반 친구도 살았다. 공부는커녕 엄청 개구쟁이라 날이면 날마다 한참 어린 동생들을 쥐고 놀았다. 그의 방 앞엔 동생들과의 승부에서 쟁취한 딱지와 구슬이 가득 쌓였다. 그의 아버지는 제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뒤처져서 어린 동생들과 낄낄대는 아들이 한심해 맨날 지청구했다."에라이, 모자란 늠(놈). 황새 울었다. 이 녀석아!"나는 지금도 연세 많은 어른들 대화에서 ‘황새 울었다’란 말을 가끔 듣는다
‘저 큰집에 여자가 혼자 산대.’‘아니야. 젊은 남자랑 재혼했대.’‘서울서 유명 대학 교수를 했대.’‘에이, 남자가 유부남이라 몰래 왔다 갔다 하는 거래.’오래전 내가 살던 아랫마을에 궁전같이 멋진 집을 지어 이사 온 여인이 있었다. 높은 담에 사나운 개들이 곳곳에 묶여있어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의 발소리만 듣고도 으르렁거리며 짖었다. 사람들은 그 집을 지날 때마다 개에게 하는 말인지 사람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는 욕을 구시렁거렸다. 모이기만 하면 도마에 올려 수군댔다.훗날 우연히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마을 사람들의 정보
약속이 있어 카페를 가니 젊은 주부들이 어찌나 많은지 빈자리가 없다. 겨우 한 자리 구해 앉아 있으려니 옆에서 하는 대화가 너무 또렷이 들린다. 주부들인 만큼 각자가 거느리고 있는 가족들의 뒷담화다.수다 중 핫한 화제는 ‘남편은 왜 혼자서는 아무것도 안 하려 하나? 철부지 아이로 변해가는 남편’ 뭐 그런 주제다. 나이 들수록 씩씩해지는 그녀들의 대화를 엿듣다 보니 그냥 내 아들이 도마에 올라앉은 듯해 겸연쩍었다. 그나마 남편들 뒷담화는 미운 자식 자랑하듯 좋게 끝맺음을 해준다. 다행이다.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호주 사는 아들네 갔을
산기슭에서 떨어진 낙엽과 도토리가 도로 옆 수로를 막아 포크레인 작업을 하고 있다. 도토리 줍기는 이맘때쯤 동네 어르신들의 놀잇감이었는데 이젠 아무도 관심이 없다. 산에 떨어진 도토리야 다람쥐 밥이라지만 길섶에 떨어진 건 쓰레기로 버려지니 아깝기도 하다.올해는 무릎이 아파 못 줍는 바람에 묵 해 먹기는 글렀다는 앞집어른의 푸념이 며칠째 계속된다. 묵 만드는 과정은 힘들고 까다롭다. 어른 부부는 투덕거리면서도 한 해도 안 거르고 주워서 묵을 쑤었다.‘이놈의 도토리 내년에 또 주워 오면 논에 콱 처박아 버릴 테닷.’묵을 쑬 때마다 주걱
긴 명절 연휴를 이용해 섬 여행을 다녀왔다. 한 친구가 자전거를 준비해 온 덕분에 연홍도 거금도 금당도 비견도를 배를 타고 건너며 셋이 걷다가 자전거를 타기도 하며 가을을 함께했다.자전거를 배운 건 열세 살쯤으로 기억된다. 그 시절 한 친구가 아버지 몰래 끌고 나온 짐 자전거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줬다. 내릴 땐 다리가 안 닿아 매번 넘어져 엉덩이와 무릎을 까면서도 재밌는 시간이었다.이후엔 제대로 타보지 못했다. 젊은 시절엔 사는 게 바빠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고 나이가 들수록 핑계가 많아졌다. 비가 와서 바람 불어서 더워서
내 면허는 요즘 말로 로컬면허다. 이전엔 서울을 누비고 다녔지만 남편 떠난 후 소형차로 바꾸고 생쥐 곳간 드나들 듯 직장과 집만 왕래한다.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자식 눈엔 나이 든 고령인이라 어딜 나서면 스토커처럼 확인을 해댄다. 집에서 100km만 벗어나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역면허증이 되어버렸다.소형차는 여러 가지 이득을 준다. 장거리 모임을 갈 때면 큰 차가 태워주고, 세금도 주차비도 도로비도 모든 게 반값이다. 그렇다고 거북이 걸음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똑 같이 잘 달린다. 신호등에 걸려 선 내 차 뒤에
아침 먹자고 불러서 앞집을 가니 소고기가 듬뿍 든 미역국이 놓여있다. 미역국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혼자 사는 나는 생일 핑계 삼아 9월 첫날부터 만들어 먹었다. 나는 며칠 뒤 있는 내 생일상을 미리 차려준 줄 알고 감동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일 언니가 무릎 수술하러 서울 가느라 곰국 대신 끓인 거란다.중년이 되어 삶의 고비로 힘들 때 친구의 손에 이끌려 용하다는 철학관엘 간 적이 있었다. 한문으로 쓰인 큰 액자 하나가 벽에 걸려 있었는데 철학박사 자격증이라 했다.“9월의 보석이군. 계절을 잘 타고나서 아무리 힘들어도 안 굶
눈만 뜨면 머리어깨무릎발~ 통증을 노래하는 앞집 어르신이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60년 가까이 부부로 살아도 전쟁은 수시로 터지는데 그땐 나이에 상관없이 화성과 금성에서 온 외계인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부부싸움은 출석 도장 찍듯 하지만 위험한 수위를 슬기롭게 조절하는 모습은 타의 귀감이 되고 존경스럽다.부인이 이번에 타온 병원 약은 통증 억제에 수면제 처방까지 있어서 자주 늦잠을 잔다. 새벽잠 없는 남편이지만 늦은 아침도 잘 참아주더니 어젠 불쑥 화를 냈다. 그리 잠만 자다가 고추는 언제 따고 남편 굶겨 죽일 거냐고.
(전편에서 이어짐)집안에 가장 높은 어른이 빨래를 널고 계시다니···.“저 아이가 날마다 나를 놀라게 한단다. 네가 봐도 신기하지? 허허.”아버지가 저리 표정이 밝았던 적이 언제 있었을까! 농담은커녕 소리 내어 웃는 모습도 기억 안 나는 늘 조용하신 아버지셨다. 그날도 어른 아이 모두 각자가 할 숙제를 그녀에게 배당받아 행하는 중이었다.혹 떼려다 혹만 부치고 올라오는 귀경길에 내 마음은 멘붕에 빠졌다.생각해 보니 어른이라는 위치만 생각하는 나의 조신한 행동은 시부모와의 거리를 더 멀게 했다. 처음부터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닌데 나는
함께 나누는 정은 사라지고 혼자 살아가는 삭막한 세상이지만 아직은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이웃이 더 많다. 오늘은 오랜 시간을 변함없이 우리 마음을 정으로 엮어 흔드는 막강 파워 여사님을 소개한다.그녀를 처음 만난 건 엄마가 돌아가신 날 우리 집 주방에서다.엄마는 32년 전 7월의 마지막 주에 위궤양 치료차 큰 병원에 갔는데 거기서 위암 진단을 받았다. 며칠 후 수술실로 걸어 들어가 죽어서 나오셨다. 급작스러운 죽음에 온 가족은 허둥댔지만 아버지가 계셔서 기댈 수 있었다.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삶과 죽음 앞에서의 의연함은 생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