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간 기획] 이젠 바뀌어야 할 때···'고인물' 법령 뭐 있나
'개정' 요구 커지는데···식약처 "사회적 파장 우려" 여전
유흥 접객원, '성차별' 넘어 '인권침해' 관점 접근 필요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사법제도는 변화를 주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시대 흐름을 읽어낼 줄은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긴즈버그

법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야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려버린' 법은 사회와의 조화를 깨트린다. <팩트경제신문>은 재창간 기획 특집으로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법령의 문제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지지부진한 국회의 입법 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이제는, 시대가 법을 바꿀 차례다. [편집자주] 

최근 유흥종사자의 범위를 '여성'이라는 특정 성별로 규정한 식품위생법 시행령 제22조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법이 변화하는 시대상에 발맞추지 못하고 여전히 '여성혐오'적 표현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법은 "'유흥종사자'란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부녀자'인 유흥접객원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부인과 여자"라는 부녀자의 사전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결국 유흥종사자를 여성이라는 특정 성별로 한정 지은, 성차별 요소가 내포된 조문이라는 지적이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지난 3일 <팩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여성을 소비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김 교수는 "1970년대 '기생 관광'에서도 볼 수 있듯, 경제·정치적 이익을 도모할 때 흥을 돋우거나 분위기를 유화시키는 '접대' 역할은 여성이 해야 한다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 있다"며 "이러한 고정관념이 법에도 남아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여년 간 성매매 여성 지원 활동을 해 오며 지난해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을 쓴 신박진영씨 역시 이날 통화에서 "유흥 접객원은 일제시대 '요정'에서 기원한 것이고,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에는 일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기생 관광' 형태로 유지돼 왔다"며 "이를 현재까지 '접대'라는 명목으로 방치해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박 씨는 "시대적인 비극을 이제는 없애야 하지 않겠느냐"며 "(유지해야 할) 모든 이유들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이러한 전근대적 규정을 갖고 있다는 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유흥종사자의 성별을 여성으로만 규정해 야기되는 법적 공백도 있다. ‘남성’ 유흥종사자도 분명 존재하나 사실상 이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떄문이다.

윤김 교수는 "실제 남성 접객원도 존재하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선 유흥종사자 범위를 특정 성별이 아닌 포괄적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윤미 변호사(여성변호사협회 공보이사)도 같은 날 <팩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유흥종사자의 범위를 '부녀자'로 한정하면 '남성 접객원'이 존재함에도 불구, 법적인 영향을 받지 못하는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개선하려는 국회의 움직임도 있었다. 2008년 조윤선  전 의원, 2014년 강은희 전 의원이 법적 처벌 근거 마련을 위해 유흥종사자 범위에 남성을 포함한다는 골자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가 무산됐다. 

2008년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조 전 의원의 개정안에 대해 "타당하다고 본다"면서도 "유흥종사자의 범위에 남자를 포함시킬 경우 유흥종사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돼 유흥주점에서의 남자 유흥종사자(호스트) 고용에 따른 사회적 파장 효과가 클 수 있다"고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심지어 강 전 의원의 개정안은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한 채로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아울러 2011년에는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가 '부녀자'를 삭제하는 골자의 개정안을 국무회의에 상정했지만 남성 접객원이 일하는 이른바 '호스트바' 양성화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의결이 보류됐다.

이에 대해 장 변호사는 "이미 (현실적으로) 남성 접객원들이 영업행위를 하는 곳이 없진 않다"라며 "개정안 통과로 '남성 접객원'이 양성화된다는 건 본말전도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행령이 신설된 1986년으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해당 조문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는 점점 커지나 관계 부처는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현실과 법령 사이 온도차가 존재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지난 4일 <팩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시행령 개정과 관련, "법 개정을 추진 중이었으나 여러 가지 사회적 합의와 파장 우려로 현재는 중단됐다"고 답변했다.

# '개정' 넘어 '삭제'까지···"'유흥 접객원' 규정, 한국이 유일"

일각에서는 시행령에서 규정하는 유흥종사자의 범위를 여성으로 한정한 '부녀자'를 남녀 모두 아우르는 '사람'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해당 조문 자체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나온다. 법령의 가장 큰 문제는 성차별뿐만 아니라 사람을 '도구화'하는 데 있다는 설명이다. 

신박진영 씨는 "유흥 접객원이라는 제도를 둔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는 이야기"라며 "유흥 접객원에 종사하게 되는 이들은 남녀 성별을 떠나 젊고 가난한 이들, 상대적으로 사회 취약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해당 조항에 대해 단순 '성차별'적 관점에 머물러 지적하는 것에서 한 단계 나아가 '인권침해적' 관점에서 바라볼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는 이날 <팩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유흥접객업' 자체가 상당히 인권침해적"이라며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하고, 식품위생법 시행령 제22조를 삭제하라고 주장해 왔다"고 말했다.

신박 씨 역시 "당연히 삭제돼야 하는 규정인데,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법이 존재해 오며) 관행처럼 굳어져 마치 (유흥접객원이) '없으면 안될 것 같은' 사회적 구조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부녀자'라는 표현도 문제적이지만, 그 뿐만 아니라 사람을 술자리에서 시중 들게하고 '유흥을 돋우게 하는 존재'라고 규정하는 조항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는 게 참 황당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현행법에 따라 부녀자의 유흥접객원 종사는 '합법적'인 일이나 성(性) 또는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물질을 매개로 한 서비스업이라는 특징 때문에 그 안에서는 (성)폭력 등 '비합법적'인 일들이 왕왕 발생해도 그들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맹점도 있다. 구매자가 '돈'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활동가는 "구매자는 '내가 돈을 지불했으니 그 시간 동안은 이 사람에 대한 모든 권리를 산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유흥 접객원이) '돈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허용되는 부분이 있다"고 질타했다.

신박 씨 역시 "유흥 접객원에게 (구매자들이) 성희롱 발언이나 폭언, 성추행을 하는 건 '그 일'(유흥 접객) 자체를 일련의 행위를 '당해도 되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라며 "그것을 '접대'의 하나라고 인식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구매자들의 그릇된 인식을 꼬집었다. 

구매자는 유흥 접객원의 '서비스 제공 시간'에 대한 값을 지불한 것이다. 시행령에서 명시한 유흥 접객원의 '서비스' 범주는 △손님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것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것 등인데, 구매자들은 사실상 자신이 이런 '서비스'를 구매한 것이 아닌 유흥 접객원의 '시간'과 그에 대한 권리를 샀다고 생각해 인권침해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한다는 해석이다. 

해당 조항이 잔존할 경우 '합법'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성차별적·인권침해적 풍토가 유지되니 성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서도 이러한 법령이 삭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현행법이 유흥 접객원들 보다는 업주를 보호하는 장치로 활용된다는 폐단도 있다. 유흥에 따른 대다수의 실수익은 유흥업소에서 벌어들이지만, 유흥 접객원이 '합법'임을 악용해 그들 앞으로 영업 이익을 돌려 세금을 물게 하는 탈세 행위도 빈번하다. 이 역시 유흥 접객원의 '합법성'이 오히려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일례다.

이 활동가는 "유흥업소 업주들은 유흥 접객원 여성을 개인사업자 형태로 고용해 (술값 등) 본인의 영업 이익을 접객원 여성 명의로 세금 신고를 해 탈세를 한다"며 "유흥 접객원 여성들은 '테이블비' 형태로 돈을 지급받기 때문에 앞선 영업 이익은 이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데, 추후 '세금 폭탄'은 유흥 접객원이 물게 된다"고 설명했다.

법령에서 '유흥 접객원'을 규정한다는 건 곧 이를 '직업'으로 인정한다는 뜻이고, 이를 통해 이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암묵적으로 방조하고 있다는 게 성매매 지원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신박 씨는 "유흥 접객원이라는 표현이 현대적 의미에서 직업으로 타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유흥 접객원'을 직업으로 규정하고 있는 건 전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하다"고 해당 법령이 국제 사회 흐름에 비춰봐도 여전히 '구시대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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