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법 개정으로 인식 전환해야
'애완동물' 아닌 '반려동물'이라더니··· '사육'은 그대로? 
'나라가 인정한' 반려동물은 개·고양이 등 6종 불과해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사법제도는 변화를 주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시대 흐름을 읽어낼 줄은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긴즈버그

법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야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려버린' 법은 사회와의 조화를 깨트린다. <팩트경제신문>은 재창간 기획 특집으로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법령의 문제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지지부진한 국회의 입법 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이제는, 시대가 법을 바꿀 차례다. [편집자주] 

지난해 8월 21일,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에 반려동물의 범위를 규정하는 제1조의2항이 신설됐다. 법적으로 '반려동물'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명칭'은 바뀌었지만 '인식'은 그대로다. 현행법 가운데는 동물을 '물건'으로 여기는 조문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입으로는 '반려동물'이라고 부르지만, 법 안에서 이들은 여전히 물건과 동등한 '애완동물'의 위치에 놓여 있다.

‘동물=물건’ 규정한 현행 민법 98조, 개정안 발의됐지만 ‘계류’ 상태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실제 입법 사이의 간극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조항이 민법 제98조다. 물건의 정의를 나타낸 이 조항은 "물건이라 함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문제는 여기에 '동물' 역시 포함된다는 점이다. 이에 반려동물 역시 '단순한 물건'으로 분류되며 동물에 대한 압류도 합법으로 본다.

이에 따른 첫 번째 문제는 반려동물이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단 것이다. 동물학대범이 그 동물을 지속적으로 소유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팀장은 지난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동물은 소유물이기 때문에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인정된다"며 "(동물에게) 학대 행위를 할 경우 동물보호법상 분리 조치가 가능하나 결국 학대자가 비용을 납부하면 (동물을) 돌려줘야 한다"며 이 자체가 동물이 '물건'에 불과하단 방증이라고 토로했다.

채 팀장은 "동물의 현재 법적 지위는 '물건'에 불과하다"면서 "일반 사물과 동물이 다르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지만 법 체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여당 대선 주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당 법령의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지난 14일 서울 보라매공원 반려견 놀이터를 방문해 현행법에 따르면 반려동물이 학대당하거나 사망할 경우 형법상 '재물손괴죄'가 적용된다고 지적하며 "반려인, 비반려인 및 반려동물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동물 그 자체가 생명체로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인식을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독일의 경우 1990년 민법 개정을 통해 동물은 물건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이후 헌법 개정까지 완료했다. 오스트리아는 이보다 2년 앞서 1988년 이같은 골자의 민법 개정을 마쳤다.

채 팀장은 "헌법은 법의 근간"이라면서 "헌법적 가치가 보장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있다"며 "국내 민법 98조 역시 독일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재산권'과 '동물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할 경우, 결국 법의 근간이 되는 헌법적 가치로 인정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법이 바뀌는 것은 사실상 사회적 인식 변화의 틀을 마련한다는 것과도 같다. 반려동물의 법적 위치가 '물건'에서 '생명체'로 바뀔 경우 사회적 인식도 이러한 방향으로 진일보 할 수 있다.

신주운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2팀장에 따르면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시각은 동물학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반려동물을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될 수 있다.

신 팀장은 "사회적 인식을 변화하기 위해서는 법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법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라는 규정이 생기는 순간 (동물을 대하는) 태도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제 국내에서도 사회 흐름에 발맞춰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법 움직임이 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논란된 민법 제98조를 보다 직접적으로 매만졌다. 정 의원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며, 별도의 법률에 의해 보호된다. 단, 유사한 규정들이 존재하지 않는 때에 한해 이 법의 규정을 적용한다"는 규정을 신설하는 민법 개정안을 지난 3월 대표발의했다. 

정 의원은 개정안에서 "현행법상 반려동물은 여전히 물건으로 정의돼 있어 반려동물의 유기, 학대, 사고가 일어나도 물건에 대한 보상이나 처벌로 처리가 진행돼 사회 통념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며 "동물은 물건이 아님을 정의에 추가해 동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자 한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법안 발의자로 함께 참여한 이용빈 민주당 의원도 같은 날 <팩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동물학대의 이면에는 동물을 소유물이나 물건으로 취급하는 생명경시 현상이 깔려 있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존중하며 법적 지위를 개선하는 건 단순히 법적 용어가 바뀌는 것을 넘어 그 사회의 생명 존중 태도가 드러나는 것"이라며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지난 4월 15일  '사회적 공존과 1인가구' 제2차 회의에서 "현행 민법상 동물은 단순한 물건에 해당해 소유권의 객체에 불과하며, 민사집행법상 동물에 대한 압류도 가능하다"며 동물의 비물건화 등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 부처에서도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법무부는 동물을 일반 물건과 구분하고, 압류 대상에서 적어도 반려동물을 제외하는 방안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신 팀장은 "(법 개정을 통해) 동물의 법적지위를 '물건이 아니다'라고 못 박는다면, 장기적 관점으로 봤을 때 해당 조문이 선언적 의미일지라도 사회적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이어 "민법이 개정된다면 그에 따라 야생생물법, 동물보호법 등 동물과 관련된 모든 법률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민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애완동물→반려동물’ 명칭 변했지만 법령엔 ‘인간 중심 사고’ 잔존해 있어

사회적으로 동물권 인식이 향상되며 가장 먼저 바뀐 단어는 '애완동물'이다. 애완의 사전적 의미는 "동물이나 물품 따위를 좋아해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김"이라는 뜻이다. 

해당 단어는 동물과 사물을 동일시할 뿐 아니라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인간 중심적 사고가 내재돼 있다는 비판에 지속적으로 휩싸였다. 이에 현재는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보편화됐고, 나아가 현행 동물보호법 시행규칙도 반려동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현행 동물보호법에서 쓰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여전히 인간중심적 사고가 남아 있어 '반려가족'의 정서를 담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용빈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이같은 내용을 개선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개정안에서 "반려동물 양육인구 1000만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요즘, 반려동물은 단순히 사육의 존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며 사랑을 주고받는 가족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시대상이 변화했음을 주지했다.

이와 달리 현행법은 이러한 시대에 따라 변화한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정서를 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니, 반려동물에 관한 법적 정의와 부적합한 법률 용어를 재정비해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게 이 의원의 설명이다. 

법안은 △사육문화→양육문화 △사육·관리→사육·양육·관리 등으로 용어를 개정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주의 깊게 볼 것은 '양육'이라는 대목이다. 단순히 동물을 기른다는 의미의 '사육'을 넘어 동물을 보살피고, 동등한 존재로 바라 본다는 의미를 함축한 '양육'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개정안 가운데 '반려동물의 정의' 항목에는 이같은 가치관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2조 1의3항은 "반려동물이란 반려 목적으로 기르는 개, 고양이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동물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개정안은 이에 대해 "반려동물이란 반려 목적으로 기르는 개, 고양이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동물을 말하며,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사람의 이웃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고 적시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 '사람의 이웃' 등의 표현을 통해 '반려'의 의미를 재차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의원은 "법 제도에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적절한 용어를 쓰는 건 중요하다"며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길만큼 정서적 유대감과 친밀감이 높아지고 있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해 현행법의 '사육'이라는 용어를 '양육' 등으로 대체한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입법 배경을 알렸다.

'알고는 있는데···동물보단 인간이 먼저' 멈춰있는 입법 기관 인식도 나아가야

현행법상 '반려동물' 정의 역시 완전하지 못하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현행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1조의2항은 개, 고양이, 토끼, 페럿, 기니피그, 햄스터 총 6종(種)만을 반려동물로 인정한다. 

반려동물의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된 동물 외에도 많은 종의 동물들이 '반려동물'로 사람과 살고 있지만 법적으로 포섭하기 어렵다.

신 팀장은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는 본 시행규칙에 언급된 6종 외에도 많은 '반려동물'이 있다"며  "입법기관, 행정기관에서도 이런 흐름을 인지하나 법을 개정하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릴 뿐더러  (개정 자체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사회적으로 동물권에 관한 인식은 높아졌지만 이것이 오롯이 입법에 반영되기까지 절차상의 어려움과 더불어 '동물 문제는 후순위'라는 입법기관의 인식에 부딪힌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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