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방송 토크쇼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 이야기의 주제는 취미였습니다. 마침 어느 연구소에서 은퇴란 단어를 들었을 때 연상되는 표현을 50대 이상 21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일이 있습니다. 은퇴했을 때 좋은 점을 물었더니 취미생활을 할 여유가 많다는 게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 밖에 가족과 있는 시간이 많다, 건강을 챙길 수 있다, 출근 안 해도 된다, 봉사를 할 수 있다가 뒤를 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취미생활을 어떻게 하나 물었더니 1위가 TV 시청이었습니다. 하루에 무려 3시간 이상을 TV를 보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여행이나 악기연주 같은 것을 생각하지만 정작 시간 상당 부분을 TV 시청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TV 시청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그걸 습관적으로 본다는 겁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실시한 '중년층의 생활실태 및 복지 욕구 조사'에서도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의 42.3%가 노후에 하고 싶은 활동으로, 젊어서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을, 16.8%는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은퇴하면 평소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이나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지만 막상 은퇴 이후에는 TV를 보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셈입니다.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이 꿈꾸는 건 은퇴를 했을 때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다른 사람에게 구속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러나 TV 시청은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그저 구경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수동적인 취미는 아무리 오랫동안 지속해도 능력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반면 능동적인 취미활동 이를테면 글을 쓴다든가, 악기연주, 그림 그리기 같은 것들은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겠지만 하면 할수록 잘하게 되면서 능력으로 발전합니다.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답니다. 그러니까 은퇴자들에게 남아 있는 8만 시간(수면이나 식사 등 필수적인 시간을 제외하고 온전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할 수만 있다면 8가지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남은 후반생을 살면서 8가지 분야의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2~3가지 분야의 전문가는 충분히 될 수 있습니다. 은퇴자들이 선호하는 활동이 자원봉사이기도 한데 전문가가 되면 그 재능을 자원봉사로 나누어줄 수도 있습니다. 재능을 이용해 돈도 벌 수 있습니다. 실버마이크란 제도가 있는데 60세 이상의 시니어가 대중들 앞에서 연주하면 지자체에서 1인당 50만원씩 줍니다. 물론 오디션에 합격해야 합니다. 그만한 실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방송 토크쇼가 끝난 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은퇴한 친구입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목공을 배우고 싶다는 꿈이 있더군요. 어느 글을 보니 목수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 중의 하나랍니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는 그런 의식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목공은 실생활에 유용하기도 하거니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때 행복을 느끼는지 조사했더니 바로 남을 도와줄 수 있거나 무언가를 창조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저는 친구에게 목공을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팁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제 그가 그걸 할지 안 할지는 그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흔히 노후대책은 재무적인 것만 생각하는데 가장 좋은 노후대책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발견하는 것이며 그리고 그걸 배우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