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이 아닌, 환자가 살던 집에서 케어 받게 하는 '커뮤니티케어'
환자·가족들 " ‘시설 퇴소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다’ 국민청원 올려
전문가들은 공립요양시설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을 망각한 행위

정부는 장애인, 노인, 치매 환자 등 돌봄이 필요한 인원에 대해 지역이 보살피는 커뮤니티케어를 도입했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 입장에선 시설의 도움이 더 필요하다며 '탈시설화'에 대한 반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픽사베이
정부는 장애인, 노인, 치매 환자 등 돌봄이 필요한 인원에 대해 지역이 보살피는 커뮤니티케어를 도입했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 입장에선 시설의 도움이 더 필요하다며 '탈시설화'에 대한 반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픽사베이

장애인과 치매환자, 노인 등 돌봄이 필요한 인원이 요양원 등 '시설'이 아니라 자신이 살던 곳에서 케어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커뮤니티케어'시스템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커뮤니티케어는 보건복지부(복지부)가 지난 2018년 발표한 정책이다. '돌봄·복지 등 사회서비스 확충', '지역사회 중심의 건강관리 체계 강화', '돌봄 수요자의 지역사회 정착 지원', '병원·시설의 합리적 이용 유도', '커뮤니티 케어 인프라 강화와 책임성 제고'를 목표로 운영한다.

하지만, 커뮤니티케어 등 정부 정책을 통해서 '탈 시설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되면서, 환자·보호자들 사이에서 되려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중장애, 치매 등 장애와 질병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건데, 획일적인 탈시설 정책에 따라 가족의 고통이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를 통해서도 ‘시설 퇴소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시됐다. 지난 14일 게시된 해당 청원은 19일 이미 1만3675명을 넘어섰다. 청원인은 중증발달장애인과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탈시설 정책의 즉각 철회를 요청하기 위해 해당 청원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정부는 탈시설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이용자들의 신규 입소를 제한·축소하고, 문제 시 법인을 해체하는 등 시설을 통째로 폐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거주시설의 입소 정원이 축소됐고, 이로 인해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들이 오히려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탈시설 정책이 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원인은 시설거주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대부분 시설 존치를 원하며, 시설의 장점은 유지하고 단점은 보완해 더 나은 주거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청원인은 중증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주장하며, 부모가 사후에도 장애를 가진 자식이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고 살아갈수 있도록 인식개선 사업의 선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상황은 치매환자 가족에게도 발생하고 있다. 현재 치매환자에 대한 일부 병원과 시설의 기피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이상행동 증상이 심할 경우 퇴원이나 전원을 요구하는 사례가 다수인 탓이다. 탈시설 정책 등에 따라 치매환자 입소정원이 줄어들 경우 가족들의 돌봄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사례를 보면, 경북에 위치한 '칠곡군립노인요양병원'이 관리가 어려운 치매환자를 기피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논란이 됐다. 해당 요양병원에 치매 환자를 입소시킨 보호자 A씨는 요양원으로부터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는 병원 측의 요청으로 하루 만에 노모를 퇴원시켜야 했다.

A씨는 "병원 측이 '노모에게 안정제를 투여했지만 (약이 잘 듣지를 않아)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 해 더 이상 돌보기 힘들다'며 퇴원을 요청했다"면서 현재 노모는 구미에 있는 다른 노인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립요양시설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을 망각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통상 치매환자 치료는 약물, 물리적 억제, 간병 등 3가지 요소에 의해 이뤄지는데, 적절한 치료법을 모색하지 않고 하루 만에 퇴원을 요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한 정신과 전문의 B씨는 "공격성을 보이거나 본인 또는 다른 환자의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으면 약물과 물리적 억제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것을 환자 가족에게 인식시키고 적절한 치료법을 찾는 것이 요양병원의 역할"이라며 "보살피기 힘들다며 해보지도 않고 하루 만에 퇴원을 요청하는 것은 병원 측의 관리 편의성만 중시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칠곡군립노인요양병원 측은 "A씨가 노모에게 안정제를 과다 투여하거나 물리적 억제를 하는 것에 대해 입원 상담 과정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서 이 병원은 치매전문병동을 찾는 중증 치매환자의 입원 요청을 여러 차례 거절한 바 있다.

공립요양병원 기능보강사업 명목으로 군비 13억8천만원 등 총 19억원의 보조금을 받아 2019년 치매전문병동을 증축해놓고도, 의료수가 미확정에 따른 수익성 확보 불가를 이유로 이를 일반 병동으로만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칠곡군 관계자는 "칠곡군립노인요양병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겠다"며 "환자 기피 사례에 대해 주의를 줬고, 시정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현재 커뮤니티케어는 정책에 방향성과 구체적인 실행 방법, 의료계 등 다수 직역들의 참여와 방식 등이 합의되지 않았다는 비난에 직면한 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탈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과 실행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 형성에 난항을 겪는 만큼, 다양한 관점에서 정책의 성공을 위한 논의가 재차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팩트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정부의 '탈시설화' 방향성은 좋았지만, 이상적인 부분만 앞섰고 정작 현실적인 문제는 챙기지 못 했다고 본다"며 "거시적인 틀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실제 환자와 가족이 겪는 불편함과 애로사항을 적극 반영해서 현실적인 커뮤니티케어 서비스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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