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와 소형 원자로···탄소중립 두축
"한국 상용화 늦었지만 따라잡을 수는 있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에너지 전환'은 전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나 석탄·천연가스 발전만으로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건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를 좇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원자력 발전은 청정 에너지이지만 '후쿠시마'라는 트라우마가 늘 따라다닌다. 청정 에너지와 안전이란 평행선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인류에 새 가능성이 열렸다. 바로 '소형 원자로(SMR)'다. SMR은 작은 용기 안에 원자로와 냉각기를 일체형으로 넣은 발전 시스템이다. 일체형이어서 폭발 위험성이 제로에 가깝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나도 소형이어서 피해는 제한적이다. 원전 선진국인 한국은 일찌감치 SMR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탈원전' 도그마에 빠져 수년을 허송했다. 그 사이 미국·중국·러시아 등 세계 각국이 앞다퉈 SMR 개발과 상용화에 뛰어들었다. 늦었지만 한국에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원전 건설이나 운영 경험을 많이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팩트경제신문>이 본격화되는 소형 원자로 전쟁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한국의 가능성을 모색해본다.

①탄소중립 시대, 소형원자로가 답이다 
②한국형원자로 vs 소형원자로 뭐가 다르길래? 
③美 웨스팅하우스 공동 수출 제안에 韓 감감무소식
④문재인 "탈원전!" vs 시진핑 "원전혁명!"
⑤임박한 택소노미···소형원전도 미국과 손잡아라

원자력을 비롯한 인류 에너지의 미래를 좌우할 유럽연합(EU)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 결정이 석달 앞으로 다가왔다. /ECIIA

지구가 춥다?···탄소중립 반대론의 궤변

여름철 "지구는 여전히 춥다"고 하는 사람들을 간혹 만날 수 있었다. '지구 온난화'를 음모론으로 치부하면서 '에너지 전환'을 불편하게 느끼는 이들이다. "이산화탄소(CO2)가 많을 수록 좋다"는 궤변을 서슴지 않는가 하면, 무더위 속에서도 "지구는 충분히 추운거 같다"는 농담을 던진다. 그러면서도 막상 피부로 느껴지는 기상 이변은 모른채 한다.

'지구가 춥다'는 주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워야 한다'는 환경론자의 주장에서 정점을 이룬다. 오는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율을 7%까지 줄이는 방안을 발표한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인 윤순진 서울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원전을 줄이는 것이 곧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산화탄소를 저감하는 것과 같다"는 신념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 탈원전 논쟁은 이같은 뫼비우스 띠 같은 '기후 딜레마'에 빠져 해결점을 찾지 못해왔다. 탈원전 반대 투쟁에 자칫 해가 될까봐 원자력계 인사들도 틀린걸 알면서도 '이산화탄소 매니아'들의 주장을 적극 반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뫼비우스 띠 같던 문제···SMR이 해결사

그러던 중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정부·여당에서 "소형 모듈 원자로(SMR) 분야에서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이다. 송영길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SMR 육성을 건의하고, 이광재 의원이 한국형 원자로로 알려진 APR400 수출 사례까지 언급하며 거들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신한울 1호기 운영허가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요청했다. 

올해 4월 국회에서 열린 '혁신형 SMR 국회포럼'은 정부 정책 기조가 탈원전을 벗어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 상징적인 행사였다. 무엇보다 원자력 발전 없이는 정부 계획대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는 점이 뜻깊다.

원자력계에선 "8년전 개발한 일체형 소형원자로인 SMART가 있기 때문에 원자로를 여러개 넣을 수 있도록 설계를 변경만 하면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미국에 손 벌릴 이유가 없고 한국형 SMR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2012년 개발을 완료해 정부로부터 인허가까지 받은 SMART 개념도. /스마트파워 주식회사
2012년 개발을 완료해 정부로부터 인허가까지 받은 SMART 개념도. /스마트파워 주식회사

모든 부품이 하나에···안정성 대폭 강화

원자력 산업의 경쟁력은 '기술'과 '관리' 능력을 종합해 평가한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관리 능력이 부족하면 후쿠시마처럼 허사가 되기 일쑤다. 이런 가운데 대폭 강화된 SMR의 안전성이 주목받고 있다. 하나의 용기 내부에 여러 개의 원자로를 배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기존의 원전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의 주요 기기도 포함된다.

대형 원전의 경우 배관이 모두 따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연결 부위에서 방사능이 유출될 수 있지만 SMR는 하나의 압력용기에 들어가 있어 사고가 발생해도 방사능 유출 위험이 현저히 낮다. SMR의 안전성 기준은 10억 년에 1회 노심 손상인데, 이는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10억 년 중에 한번이라는 의미다.

국내에선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SMR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한수원은 예비타당성 신청을 올해 9월 중에 마무리하고 10년내 완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 사장은 "안전성과 효율성 그리고 유연성을 대폭 개선한 그간의 개념설계와 기획을 마무리했다"며 "지난 2012년 설계인증을 받은 스마트(SMART)를 개량한 스마트모델의 설계변경인가를 진행중에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한수원은 오는 2030년이면 신재생에너지와 소형원전이 탄소중립의 두 축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EU에 속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유럽기후법'을 채택해 오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삼고 원자력 발전 도입 속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동유럽 국가에서 원자력 열풍이 강하다. 폴란드는 최근 42조원을 투입해 오는 2040년까지 순차적으로 총 6기(총 6~9GW) 원전을 완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체코 정부도 오는 2040년까지 원전 발전 비중을 30%대에서 최대 58%까지 확대하기 위해 1000~1200메가와트(㎿)급 원전 1기를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수원도 원자로 기술 수출 및 SMR 개발 협력을 전제로 수주에 도전장을 던진 상황이다.

전세계에서 개발중인 SMR 모듈들.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세계에서 개발중인 SMR 모듈들. /국제원자력기구(IAEA)

대부분 경쟁국 2030년 상업운전 목표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SMR 개발 경쟁에서 눈여겨 볼 점은 대부분 국가들이 2030년을 상용화 목표 년도로 삼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UAMPS사의 누스케일(Nuscale) 건설 계획을 당초 12기(50MWe)에서 6기(77MWe)로 변경하고 오는 2030년 상업운전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도 러시아의 극동개발부는 야쿠티아지역에 저출력 SMR 건설과 운영을 위해 부처간 워킹그룹을 구성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법률 초안까지 마련했다. 오는 2024년 허가, 2028년 완공이 목표다.

반면 SMR 개발이 적어도 8년은 걸리는 장기 사업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개발 속도가 늦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SMR 예비타당성 신청안을 기획중인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비록 우리가 미국의 뉴스케일 등 해외 개발에 비해서는 다소 늦었지만 SMART의 개발 경험과 실제 건설경험 등을 볼 때 빠른 시간 내에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안전과 경제성을 모두 갖춘 SMR은 연말 예정된 유럽연합(EU)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 결정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황일순 울산과학기술원(UNIST) 석좌교수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데다 효율성이 좋은 원자력은 탈탄소 시대로 가는 길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며 "한국과 같은 신재생 효율이 높지 않은 국가에선 인공태양인 원자력 발전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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