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팽창 맞서 트루먼은 봉쇄, 레이건은 격퇴 전략 구사
중국 봉쇄 나선 바이든, 격퇴 전략 쓰려면 경제 살려야

사진은 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 양자회담장 앞에서 참가국 정상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앞줄 왼쪽부터 남아공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 문재인 대통령, 미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두번째 줄 왼쪽부터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호주 스콧 모리슨 총리. 세번째 줄 왼쪽부터 UN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이탈리아 마리오 드라기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연합뉴스
사진은 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 양자회담장 앞에서 참가국 정상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앞줄 왼쪽부터 남아공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 문재인 대통령, 미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두번째 줄 왼쪽부터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호주 스콧 모리슨 총리. 세번째 줄 왼쪽부터 UN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이탈리아 마리오 드라기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연합뉴스

세계 기축통화를 발행하고 전세계 국방예산의 약 40%를 지출하는 미국의 대통령이 국내외로 행사하는 권한은 막강하다. 미국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자유민주세계의 번영과 안보를 수호하는 막중한 책임을 진다. 가치를 같이하는 국가들과 연합해 전체주의 독재정권의 위협을 봉쇄하고 격퇴해야 한다. 하지만 그 성과는 국내 경제·사회정책의 성패와 연관된다.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작년부터 화웨이 제품 사용을 금지하며 강경 대중노선을 걷기 시작한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영국총리와 함께 21세기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최대의 위협세력으로 떠오른 중국과 러시아의 전제적 독재정권을 봉쇄하기 위한 그랜드 플랜을 마련하고 이를 G7 정상회담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공동성명으로 구체화했다.

이는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전대통령이 소련이 동유럽에 '철의 장막'을 두르면서 자유진영에 대한 위협을 강화하고 있다고 경고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영국수상과 함께 전체주의 공산권의 팽창을 봉쇄하기 위하여 UN과 NATO, IMF와 GATT를 창설하며 2차대전후 새로운 세계질서를 창조했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결국 최종적으로 공산블록을 붕괴시키고 소련의 해체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것은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영국수상과 함께 전세계적인 반공 격퇴 전략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펼쳤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이었다. 바이든은 과연 21세기 트루먼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레이건의 영예까지 차지할 것인가?

해리 트루먼은 미국 중부 미주리의 시골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캔자스 시티(Kansas City)에 있는 한 경영전문대학(community college)에 진학하여 부기 회계 등을 배운 것이 공식적인 학력의 전부로서 대졸 학력이 없는 소수의 대통령 중 한 명이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영화 미나리 촬영지에 가까운 오클라호마에서 사업을 펼친다.

사업을 하면서 트루먼은 틈틈이 시간을 내어 로스쿨에서 야간 강의를 듣고 정치인의 꿈을 키운다. 플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전대통령의 선거를 도운 인연으로 연방상원의원으로 당선되고 1945년에는 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그런데 부통령이 된 지 불과 3개월이 되지 않은 시기에 세계대전과 뉴딜정책을 이끌던 루즈벨트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한다.

상원의원 재임 8년간 국내정책만 담당하여 군사외교와 국제정치에는 문외한이었던 트루먼의 어깨에 한창 진행중인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마무리지어야 하는 중책이 내려진다. 유럽전선에서는 1943년 2월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승리와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이은 연합군의 강력한 공세로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마침내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한다.

그러나 태평양전선에서는 일본군이 남태평양과 인도차이나, 오키나와 전선에서 강력하게 저항을 지속하면서 미군의 희생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만약 전선이 일본 본토로 확장될 경우 수십만명의 미군이 더 전사해야 할 상황이 되고 있었다. 이에 트루먼은 결단을 내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 투하를 명령한다.

이로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지만 소련은 동유럽에서 공산세력의 팽창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에 트루먼은 1947년 트루먼독트린을 통해 전체주의 공산정권으로부터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모든 자유 민주국가들에게 정치•군사•경제적 지원을 다하겠다고 선언한다. 우선 소련의 팽창위협에 노출되었던 그리스와 터키의 반공정부에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제공한다.

이에 더하여 마셜플랜(Marshall Plan)으로 불리는 유럽부흥계획을 통하여 전쟁으로 거의 빈사상태에 빠진 유럽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재건하여 소련에 맞설 힘을 기르도록 한다. 소련과의 냉전이 격화되자 국내적으로 중앙정보국(CIA)와 국가안보국(NSA)을 창설하고 국제적으로 북대서양조약에 서명하여 군사동맹인 나토(NATO)를 탄생시킨다.

지난해 4월 21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미군참전기념비에서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 동상 너머로 태극기와 성조기가 강풍에 펄럭이고 있다./연합뉴스

이에 대해 빌 클린턴(Bill Clinton) 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자유세계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트루먼 전대통령은 이를 위하여 새로운 시대를 창조했어야만 했다"고 평가한다. 트루먼은 특히 한국과 인연이 깊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신속하게 미군을 파병하고 전시동원체제를 구축하여 한국을 공산권의 위협에서 구출해 냈다.

그러나 트루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 전후 고립주의에서 탈피하여 자유세계와 시장경제의 새로운 질서를 세웠지만 동시에 한국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중국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누가 중국을 잃었는가’라는 비판은 신랄하다. 그것은 트루먼이 외교안보의 전문가가 아니었고 국제정세의 디테일에 대한 이해도도 높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전후 군비지출 삭감으로 경제는 심각한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동시에 전시 통제물가정책의 철폐로 인플레이션율은 20%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트루먼 정부는 국채금리 상한을 2.5%로 묶는 페그제를 고수한다. 또, 1946년에는 역사상 최악의 총파업에 직면한다. 그럼에도 트루먼은 균형예산에 집착하여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상하는 우를 범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팽창재정을 다시 가동하면서 경제는 회복세를 맞지만 트루먼의 경제정책은 대체로 시의적절하지 못했다. 한편, 트루먼은 전국민의료보험 등 미국사회를 크게 변모시킬 공정사회협약(Fair Deal)을 추진한다. 그러나 중간선거에서 패배하고 의회내에 다수의 우군을 확보하지도 못하면서 페어딜은 사장되고 트루먼의 개혁의 꿈도 시들고 만다.

로널드 레이건은 일리노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조그만 인문대학(liberal arts college) 유레카 칼리지(Eureka College)를 졸업한다. 이후 라디오 스포츠 해설자와 TV 영화 배우를 거쳐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역임하고 1981년 대통령에 취임한다. 하지만 그의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의 이중고에 허덕이며 종이호랑이라 조롱받던 미국이었다.

미국을 재건하기 위하여 레이건은 우선 연준의장이던 폴 볼커(Paul Volcker)에 힘을 실어준다. 볼커는 기준금리를 20%로 올려 인플레이션을 해결한다. 물가안정의 바탕 위에서 공급주의 경제철학에 기반한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를 통해 감세정책을 추진하고 플라자합의를 통하여 수출경쟁력의 회복을 돕는다. 또한, 국방비지출을 획기적으로 늘이며 재임중 실질 GDP 성장율을 평균 7.9%로 끌어 올린다. 미국경제를 호황의 반석 위에 굳건히 올려 놓은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자신감에 기반하여 공산세력을 축출하기 위한 전지구적 캠페인을 전개한다. 레이건의 반공 격퇴전략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3년 그레나다(Grenada) 침공작전이다. 미군은 해병 2천명과 특수부대를 포함 7천여명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며 전광석화와 같은 작전을 펼쳐 2개월여만에 공산 쿠데타를 저지하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킨다.

레이건은 소련을 전체주의 '악의 제국'이라 규정하고 ‘레이건독트린’을 통해 힘을 바탕으로 한 공산권 격퇴에 나설 것임을 명확히 한다. 1983년 KAL 007기가 소련공군기에 의하여 격추돼 569명이 사망하는 비극적 사태가 발생하자 GPS 기술을 민간에 공개하는 한편 미사일 방어시스템 구축을 위한 전략방어계획(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을 수립한다.

일명 스타워즈로 불리는 SDI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현대 인터넷 IT 기술의 기반이 되는 신기술에 대한 투자가 대규모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레이건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소련도 군비 지출을 대폭 늘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CIA의 암묵적 합의하에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원유수출을 주된 재원으로 하는 소련 경제는 파멸을 맞게 되고 결국 연방 해체에 이르게 된다.

한편, 중국은 1972년 닉슨의 북경 방문 이후 소련과 대립하면서 일정부분 미국과 이해관계를 같이한다. 1979년에는 등소평이 백악관을 방문하면서 양국이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되고 미국은 중국의 ‘원차이나’ 정책을 받아들인다. 역대 미국대통령들도 중국을 방문하면서 우호를 증진한다. 특히 빌 클린턴은 중국의 WTO 가입을 지원하여 중국의 경제성장을 크게 돕게 된다.

이후 중국의 국제시장에서의 교역규모는 급성장을 거듭하여 2000년도에 2492억 달러로 세계전체의 4%에 불과하던 수출규모가 2020년에는 2조6000억 달러로 늘어나 세계수출량의 15%를 차지하게 된다. 그럼에도 중국은 2012년 시진핑의 집권 이후 중화민족적 국수주의의 색채를 강화하고 미국의 달러패권과 글로벌 헤게모니에 공공연하게 도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전 대통령은 확대 일로에 있던 대중 무역적자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국과의 무역협상에 나서게 된다. 트럼프는 협상카드로 대부분의 중국상품에 대하여 평균 18%에 달하는 수입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의 기술·지적재산권 절취, 수출기업에 대한 보조금지원 등의 문제를 시정하려 하였으나 중국과의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금년초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경색된 미중관계가 풀리지 않겠는가 하는 전망이 일부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바이든이 중국을 얽어매고 있는 고삐를 풀어주는 흔적은 찾기가 어렵다. 오히려 바이든의 대중정책은 보다 종합적이고 장기적이다. 바이든은 트루먼의 봉쇄전략을 취하면서 여건이 되면 레이건의 격퇴전략까지 차용해 중국을 몰아붙이려고 한다.

바이든의 대중 봉쇄전략은 미일·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첫모습을 드러낸다. 스가 일본총리를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대만해협, 남중국해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위협에 맞설 것을 분명히 한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서도 미국의 대중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미국-한국-일본-인도-호주로 이어지는 대중봉쇄의 합종(合從)을 이루어내는 데 성공한다.

영국 콘월(Cornwall)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에서 바이든의 대중 봉쇄전략은 보다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우선 70개 항목으로 이어진 장문의 공동성명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에 대한 국제적 협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10억 도스의 백신과 500억 달러의 IMF 지원금을 통해 저개발국가들의 코로나 퇴치와 회복을 지원하기로 한다.

또한, 자유민주적 가치를 위협하는 중국의 전제주의 독재정권에 대한 대응의지를 구체화한다. 구체적으로 규칙에 기반한 시스템(rules-based system)을 강화하고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비시장적 정책과 관행을 시정토록 촉구한다. 더불어 신뢰성 있고 자유로운 데이터의 흐름과 5G 및 인터넷정보통신기술인 ICT 인프라스트럭처의 안전성과 투명성 보호를 강조한다.

더불어 불필요한 무역규제의 사용을 비난하고 희귀광물과 반도체 등 핵심 원자재의 탄력적인 공급망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정부 주도하에 소수인종을 강제노역에 동원할 경우 그 생산 제품을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에서 배제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더욱이 신장과 홍콩에서의 인권탄압을 언급하고 중국의 압제적 행위를 직접 비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인권, 법치, 양성평등의 중요성 그리고 벨라루스와 북한의 인권문제를 언급하는 동시에 중국의 지원을 받는 미얀마 군사 쿠데타 세력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명한다. 대만해협 문제를 논의하고 북핵의 완전 폐기를 촉구하는 한편, 대중봉쇄의 한 축인 한국-인도-호주를 정상회담에 초청하고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조사를 촉구함으로써, G7이 더 이상 중국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은 G7이 NATO 방위비 분담 문제와 장기간에 걸친 보잉-에어버스의 무역분쟁으로 미국과 유럽이 분열하는 상태에서 주제넘은 내정간섭을 하고 있다고 평가절하한다. 그러자 바이든은 또 한번 무서운 대중봉쇄의 집중력을 보여준다. NATO 정상들과의 회담 후 중국이 추진하는 강압적 정책들이 민주적 가치에 대한 시스템적 도전이라 규정하는 공동선언을 이끌어 낸다.

여기에 부가하여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수십년간 양국간 무역분쟁의 불씨가 되어 왔던 보잉과 에어버스간 정부보조금 지급과 관세부과를 둘러싼 법적 다툼을 중지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한다. 이는 유럽이 영국•미국과 함께 중국을 봉쇄할 연횡(連衡)에 대한 합의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바이든은 G7을 통하여 자유세계의 보루로서 미국의 귀환을 알리고 ‘보다 나은 세계 질서의 재건’(B3W: Build Back Better World)이라는 비전을 선보였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서는 B3W 플랜은 40조 달러를 투입해 세계 각지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봉쇄하기 위한 계획이다. 

G7은 향후 한국-인도-호주를 포함하는 G10으로 개편되면서 대중봉쇄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G10은 중국이 계속 자유시장질서의 룰을 어길 경우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다. 미국은 향후 국내 감사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중국 기업의 증권을 상장 폐기하고 중국군과 연관되거나 감시 기술을 개발하는 중국 업체에 대한 거래도 금지시킨다. 

트루먼, 레이건, 바이든은 명문대를 졸업한 명망가 출신이 아니지만 실전에서 배워 역사의 새 지평을 연 대기만성형 지도자들이다. 역사학자들의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트루먼은 6위, 그리고 레이건은 9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는 링컨이고 2위는 조지 워싱턴이다.

바이든에 대한 평가는 향후 중간선거 결과와 미국의 경제상황이 좌우할 것이다. 만약 서플라이 체인 회복이 늦어져 생산비용 상승이 지속되고 코로나로 인해 연준과 정부가 푼 막대한 유동성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장기화하거나 소비절벽을 맞아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경우 바이든은 중간선거에 패배하고 국내 사회경제정책 추진도 탄력성을 잃게 될 것이다.

반면, 연준의 공언대로 인플레이션이 단기에 그치고 경기 회복세가 지속된다면 힘을 바탕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변혁시킨 역사적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링컨이 말한 대로 ‘걸음걸이는 늦지만 결코 뒷걸음치지 않는’ 지도력을 보인다면 권위주의 전제독재에 맞서 새로운 지평을 연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도 G10의 멤버로서 자유민주적 가치를 수호하는 첨병이 될 것인지 경제적 실리만 따지는 주변국에 머물 것인지 결정할 시점이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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