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체제 전환 완료 계열사 회장직 무의미
대주주 역할 강조···경영 일선에서만 2선 후퇴

광주 건설 현장에서 잇따라 대형 사고를 일으킨 HDC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왼쪽)이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열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 건설 현장에서 잇따라 대형 사고를 일으킨 HDC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왼쪽)이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열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광주 참사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무늬만 사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계열사 회장직을 내놓더라도 지배주주로서의 영향력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전망이다.

정 회장은 17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참사의 책임을 통감하면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정 회장은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면서도 "대주주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다. 달리 말해 지주사인 HDC 대표이사 회장직은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한국의 기업지배구조에서 오너란 법인과 고용 계약을 맺고 일하는 대주주 경영인을 뜻한다. 정 회장의 대주주 선언은 현대산업개발과의 고용 계약은 해제하면서도 지배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해 6월 기준 HDC그룹 지분 33.6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그의 장남 정준선 씨는 지분 0.33%(20만주), 차남 정원선 씨는 지분 0.28%(17만주), 3남 정운선 씨는 지분 0.18%(10만5000주)를 보유하고 있다. 정 회장의 부인 김 줄리앤 씨는 지분 0.08%(4만6000주)를 소유해 총 38.1%에 이른다.

현대산업개발은 2018년 정몽규 회장→현대산업개발→기타 계열사를 거쳐 다시 아이콘트롤스(HDC아이콘트롤스)→현대산업개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지주회사인 ‘HDC’와 사업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로 조직을 분할하면서 정 회장→HDC→HDC현대산업개발 및 기타 계열사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즉 HDC그룹이 이미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기 때문에 정 회장이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을 내려 놓더라도 HDC그룹 최대주주로서의 계열사 지배력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회장이 각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사전에 내정하고 이사회에서 사실상 추인하는 방식으로 간접 경영을 펼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의 지주회사 체계와 관련 "기업의 대주주는 계열사를 통해 실제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권리에 비해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정몽규 회장 일가의 경영 승계 준비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정 회장의 아들 준선(1992년생), 원선(1994년생), 운선(1998년생)씨의 HDC 주식 매수는 2019년 5월부터 시작돼 지난해 6월 기준 각각 20만주(0.33%), 17만주(0.28%), 10만5000주(0.18%)에 이른다.

정 회장이 현대산업개발 회장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은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구역 참사에 이어 7개월 만인 이달 11일 신축 중이던 화정아이파크의 외벽이 무너지는 등 연달아 일어난 대형 사고로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산업개발의 수주 사업 현장에서 계약 해지 통보가 이어지고 있고 아이파크 브랜드 퇴출 움직임까지 보이는 등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으면서 총수의 2선 후퇴 결단 없이는 사태 진화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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