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선거 앞둔 금리 인하로 리라화 급락
시장 순리 정책으로의 회귀가 열쇠

터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연합뉴스
터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연합뉴스

한 젊은이가 있었다. 집은 가난하여 빈민촌에서 성장했지만 늘 큰 꿈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생수를 팔고 축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으나 언젠가 크고 도덕적인 나라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그랜드 플랜을 그리고 있었다. 과거 국가의 빛나는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다.

군부가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는 나라에서 이에 반발하는 연설을 하다 투옥되기도 했지만, 대중의 필요와 국가의 당면 현안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 선거에서 연승하고 총리가 되었다. 총리가 된 후 합리적 경제정책으로 10년여 만에 국부를 두 배로 키워 정치기반을 확고히 했다.

현재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터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의 이야기다.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유가가 급등하자 석유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터키의 인플레이션이 크게 악화했다. 급등하는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데 에르도안은 그에 반대했다. 

금리인상을 추진하던 중앙은행 총재를 해임하고 측근을 그 자리에 앉혀 금리를 오히려 내리게 했다. 그러자 터키의 경제정책을 신뢰하지 못한 국제 투자자금이 이탈하면서 리라화 가치가 급락했다. 올해 초 달러당 7리라 안팎이던 환율은 한때 달러당 18리라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렇다면 에르도안이 도외시한 것은 무엇일까? 첫째, ‘인플레이션이 높으면 그 나라의 통화 가치가 떨어진다’는 기본적 인식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품질의 금 1온스를 A국에서는 그 나라 통화 1단위로 살 수 있고 B국에서는 그 나라 통화 2단위로 살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당연히 A국 통화가치가 B국 통화가치보다 2배 높아야 한다. 즉, 환율(B국/A국)이 2가 된다.

그런데 이제 B국에서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져 금 1온스의 가격이 그 나라 통화 3단위로 높아졌다고 하자. 이렇게 되면 A국 통화가치는 B국보다 3배가 되어야 한다. B국 통화의 환율이 인플레이션을 반영하여 A국 통화당 2에서 3으로 50%가 올라야 한다. 

그럼에도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20%만 오른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A국 통화 1단위는 B국 통화 2.5단위와 교환된다. 이제 어떤 B국 거주민이 자국 통화 2.5단위를 A국 통화 1단위와 바꾼 뒤, 이를 이용해 A국에서 금 1온스를 산다고 하자. 그가 이 금을 B국으로 가져와 팔면 B국 통화 3단위를 받을 수 있다. 그는 이 간단한 거래로 자국 통화 0.5단위의 이익을 본다. 

이 소문을 듣고 많은 B국 거주민들이 이 거래에 참여하게 되면, 외환시장에서 매수세가 몰린 A국 통화가치는 오르고 매도가 집중된 B국 통화가치는 떨어진다. 결국 환율은 A국 통화 1단위가 물가 상승을 반영해 B국 통화 3단위와 거래될 때까지 오른다.

둘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면 금리를 높여야 한다’는 경제의 기본상식이다. 채권시장에서 금리는 부도 위험이 없는 미국 달러화 단기국채와 같은 무위험 자산의 수익률에 인플레이션, 대출 만기, 시장 유동성과 차입자의 부도 위험 등을 감안한 각종 프리미엄을 가산해 정해진다.

이 중 인플레이션은 금리와 직접적 연관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현재 인플레이션이 연율로 20%라 하자. 오늘 100만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을 내년에는 120만원을 줘야 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채권 금리가 14%에 불과하다면 어떨까?

이 채권에 100만원을 투자하여 1년 후 원리금인 114 만원을 받았다 하여도, 가격이 올라  현재 살 수 있는 물건을 더는 살 수 없게 된다. 인플레이션으로 구매력이 상실되어 채권의 실질금리가 명목금리인 14%에서 물가 상승률 20%를 뺀 마이너스(-) 6%가 되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 16일 터키 앙카라에 있는 환전소에서 한 고객이 환전을 하고 있다. 터키 중앙은행이 치솟는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100bp 인하했다./연합뉴스
2021년 12월 16일 터키 앙카라에 있는 환전소에서 한 고객이 환전을 하고 있다. 터키 중앙은행이 치솟는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100bp 인하했다./연합뉴스

따라서, 인플레이션율이 20%라면 금리는 최소 20% 이상이 되어야 한다. 경제와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면, 유동성 위험과 부도 위험을 감안해 금리가 20%보다 훨씬 높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이 더 이상 돈을 빌리지 못해 부도 위기에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환율이 높아져 경제가 성장하면 인플레이션은 문제 되지 않는다’는 아전인수 격의 경제 전망이다. 인플레이션율이 20% 이상 치솟을 것이 확실한 데도, 에르도안이 중앙은행에 압력을 넣어 기준금리를 오히려 19%에서 14%로 내리자, 해외 투자자금이 급속히 이탈하기 시작했다.

또한, 터키 국민들도 리라화 예금을 인출해 달러를 포함한 외화 예금으로 갈아탔다. 최근까지 터키의 국내 은행 전체 예금의 약 60%가 달러 예금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외환시장에서 터키 국내외 투자자의 달러화 매수세가 집중되자 리라화 환율이 급등한 것이다. 

환율이 급등하면 수출 경쟁력이 향상되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터키의 엄청난 외채 규모이다. 최근 터키의 총 대외채무 규모는 약 4500억 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61%에 달한다. 환율이 100% 상승하면 외채 규모도 두배로 커진다. 은행의 자산가치는 그대로인데 채무 규모만 커져 자기자본비율이 악화되고 은행 위기가 촉발된다.

외채 규모가 커진 것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의 결과이다. 최근 10년간 터키의 연(年) 평균 경상수지 적자는 364억 달러에 달한다. 그만큼 해외로부터 외채를 빌려 메우지 않으면 부도를 면할 수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환율상승은 수입 물품의 가격을 올려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킨다. 그러면 환율이 또 오르고, 물가가 또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다.

결국 이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하는 것은 금리를 올려 먼저 물가를 확실히 잡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선거를 앞둔 에르도안은 경기를 침체에 빠뜨릴 수 있는 금리 인상 카드를 버렸다. 그보다는 쉬운 길을 선택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해, 국내 리라화 예금 보유자에게 환율 인상으로 인한 손실분만큼 보상을 약속했다. 

예를 들어 리라화 금리가 14%인데 달러 환율이 30% 오를 경우, 그 차이인 16%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달러화 금리가 거의 0% 상태에서 달러로 예금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리라화 예금이 달러화 예금으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고육지책이다.

또한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를 털어 달러를 팔고 리라화를 사게 했다. 12월에만 150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이 조치에 힘입어 리라화 환율은 한때 달러당 11리라 아래로 하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미봉책이 효과를 거두리라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할수록 외환보유고가 줄어 국가 부도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현재 터키가 겪고 있는 외환위기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터키는 과거 거의 10년에 한번씩  비슷한 유형의 외환위기를 경험했다. 이 악순환을 끊은 것이 역설적이게도 에르도안이었다. 정통 경제학 원리에 따른 처방을 잘 받아들여 한때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루었다. 터키 국민을 진정 위한다면 위험한 에르도안 경제학(Erdoganomics)을 접고 고집을 내려놓아야 할 때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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