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현의 코인세상 뒤집어보기]
국내 암호화폐 거래자 1000만 시대
제도화 논의는 구 금융 잣대로 진행
섣부른 규제, 중앙화 거래소만 이익
탈중앙화 대변할 목소리 반영해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연합뉴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연합뉴스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암호화폐 또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규제 논의가 최근 더욱 활발해진 듯하다. 전체 암호화폐의 시가총액이 3조 달러(약 3500조원)에 육박하기도 했고, 미국 전체 국민의 17% 정도가 암호화폐 구매 경험이 있다고 한다. 미국 남성 18세에서 29세까지의 인구 중 43%가 암호화폐 구매 경험자라는 보도도 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자의 수도 이미 1000만명이 넘었다고 하니, 미국에 비해 관심이 적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규모가 커지고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는 데 반해서, 체계적인 규제 프레임워크가 아직 정립되지는 못했다. 워낙 빠른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고, 기존의 규제 방법론으로는 무엇을 규제해야 할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기존에 금융과 별 관계가 없던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시장에 개입하면서, 이들과 기존 금융 시장 지배 세력과의 복잡한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제대로 된 규제 체계 확립에 앞서서, 무엇보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크립토 산업의 본질적 특징과 여기에 참여하는 많은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이러한 흐름이 사회 전반에 가져올 영향에 대한 평가를 위한 공론의 형성이 먼저다. 문제는 크립토 산업에 대한 규제 논의에 있어서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관례적으로 전통적인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 논의를 한다고 치면, 여기에는 국가 기관에서 이를 관할하는 관료들, 주요 시중 은행과 금융 기관의 대표 또는 고위 임원, 일부 대학 교수, 금융 전문 변호사 등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금융 산업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이고 여론 형성을 하는 핵심 주체라는 점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규제 논의 구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크립토 산업에 대한 규제 논의 역시 이러한 구조를 반복하는 게 이상할 게 없다. 

미국 하원 금융위원회 회의./유튜브
미국 하원 금융위원회 회의./유튜브

얼마 전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가 “디지털 자산과 금융의 미래"라는 주제로 청문회를 열었다. 하원의원들과 함께 증인으로 참석한 인사는 모두 대표적인 암호화폐 관련 기업의 경영자였다. 중앙화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의  CFO, USDT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서클의 CEO, 암호화폐와 파생상품 거래소인 FTX의 CEO, 비트코인 채굴 기업인 비트퓨리의 CEO, PAX 스테이블 코인 업체인 팍소스의 CEO, 스텔라 재단의 CEO 등이 참석하여 증언을 하였다. 각 회사마다 다소간의 입장 차이는 있었지만, 규제의 필요성은 기본적으로 받아들이되, 새로운 규제 프레임워크의 확립 전에 획일적인 정부 주도의 규제는 건전한 시장의 형성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그런데 이러한 증인의 구성 자체가 크립토 산업의 본질적인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크립토 산업은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커뮤니티에서 탄생했고, 비록 내부에 다양한 정치적 입장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탈중앙화된 생태계를 확장시키고자 하는 방향성은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은 모두 암호화폐 관련 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매우 중앙화된 운영을 하고 있는 기업의 입장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비록 중앙화된 기업을 크립토 산업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지는 몰라도, 크립토 산업 전체의 이익을 이들이 대변하고 있다고 전제하는 것은 매우 큰 착각이다. 

탈중앙화된 프로토콜과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많은 개발팀과 커뮤니티의 입장을 이들이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 것인가? 다양한 디파이 프로젝과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중앙화된 기업이 확보하고 있는 고객의 이해관계와 입장 역시 매우 다를 수 있다. 이들 중앙화된 기업들이 일부 규제 준수를 허용하고자 하는 것은 고객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후발 주자들의 문턱을 높여서 이미 확보한 자신의 기득권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제도권화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 불투명한 중앙화된 거래소 내부에 존재할 수 있는 각종 시세 조작과 프로트 러닝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스스로 제기할 이유가 없다. 투자자 보호라는 매우 원칙적인 규제의 당위성을 명분으로 실제는 중앙화된 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고, 정작 미흡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안전 장치의 강화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이번 청문회에서 확인했듯이, 아직 체계적인 규제안을 마련하기에는 시기 상조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 지배적이라는 점은 다행이다. 산업적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복잡한 이해관계 상충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섣부른 규제안부터 도입하려는 시도는 결국 무엇을 위한 규제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 것이다.  

한국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크립토 산업 규제에 대한 방향성 논의가 활발해졌다. 일부 중앙화 거래소와 관련 업체들이나 이를 대변하는 변호사 외에 보다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과 커뮤니티의 목소리가 논의에 반영될 수 있는 토론회나 공청회가 열리기를 바란다.  

정우현 아톰릭스랩 대표

국내 블록체인 커뮤니티 1세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 석사 출신으로, 이후 미국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커뮤니케이션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아톰릭스랩 대표로 서울 이더리움 밋업 공동 운영자, 한국이더리움 사용자그룹 운영자를 역임하고 있다. 지난 2014년부터 국내외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다. 서울 이더리움 밋업과 한국 이더리움 사용자 그룹을 중심으로 이더리움 커뮤니티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2018년 아톰릭스랩 설립 후 개인키를 보다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키관리 솔루션과 이에 기반한 Dapp 지갑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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