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형 국민대 경영대학원 교수 인터뷰
워킹맘 기자에서 금융사 의장 되기까지
여성·청년에 "당당하게 야심 가져달라"

[the 우먼]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만의 길'을 걷고 있는 여성을 만난다. 역경 속에서도 가슴 속 깊이 간직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다. [편집자주]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당시 기자들이 경제와 금융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을 절감했어요. 누구보다 해외 상황을 먼저 접하는 언론이  조짐을 파악하고 경고 메시지를 냈더라면 그런 위기가 갑자기 닥쳤을까요?"

외환 위기에 대한 조기 경보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가 공부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이 교수는 "무지한 채로 국민의 눈과 귀가 된다는 게 굉장히 부끄러웠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언론인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해 국내 여성 최초로 금융사(SC제일은행) 이사회 의장의 자리까지 오른 이 교수는 팩트경제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여성과 청년 세대를 향해 "당당하게 야심을 가져라" "리더가 되어 달라"는 특별한 메시지를 던졌다.    

외환 위기 예상 못했던 반성으로 공부
외신 대변인 활약하며  IMF 탈출까지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이 교수는 서울대 국사학과(82학번)를 졸업하고 일요신문, 민주일보, 학원사가 운영하는 잡지인 주부생활 기자를 거쳐 경향신문에서 재경부 출입을 담당하고 있었다.

ㅡ외환 위기가 어느 정도로 체감됐나요.

"제가 근무했던 경향신문의 오너였던 한화그룹이 회사를 분리시켰어요. 그때부터 사원이 주주인 기업이 됐지요. 많은 동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무엇보다 외국인이 들어와 이거해라 저거해라 요구하는 것이 자존심 상했어요."

기자 경력 10년 차로 접어든 워킹맘이었던 이 교수가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구체적 이유는 이러했다. 당시 휴직계를 권하는 선배들의 만류를 제치고 사표를 낸 그는 1998년 3월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1기생으로 입학했다.

"경제학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기업이 더 흥미를 끌더라고요. 봄·여름·가을 학기가 붙어 있는 쿼터제라 석사를 빠르게 마칠 수 있었어요.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해서 부족했던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됐지요."

그러던 1999년 12월 자신의 출입처였던 산업자원부가 이 교수를 다시 불렀다.

"재경부, 산업부, 금융위원회 노동부, 예산처 등 6개 부처에서 외신 대변인을 뽑았어요. 제가 공부 중인 것을 알던 산업부 직원들이 지원을 해보라고 연락이 왔어요. 지원자들이 좀 많았는데 꽤 좋게 봐주셔서 제가 됐어요. 유학 한 번 안 가본 토종인데 외신 대변인을 하느냐는 시비가 있었지만 금새 사라졌어요."

당시 이 교수에게 주어진 임무는 IMF 탈출이란 무게감 있는 업무였다. 외신과 외국 투자자들에게 한국을 잘 이해시켜서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단 하루 쉬는 날 없이 2001년 5월까지 근무했다.

ㅡ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제가 했던 일은 외신이 한국 경제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매일 스크랩하고 정리해서 국장급 이상에 돌리고 또 브리핑하는 것이었는데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영어는 물론 큰 공부가 되었어요."

외환 위기 탈출은 예상보다 빨랐다. 앞서 39억 달러까지 떨어졌던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빠른 속도로 회복해 1998년 말 520억 달러로, 2001년 말에는 1028억 달러로 1000억 달러선을 돌파했다. 이 교수는 2001년 8월 IMF 구제금융 195억 달러 조기 상환을 앞두고 민간으로 복귀했다.

외국계 헤드헌터의 스카웃 제의가 쏟아졌지만 이 교수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KDI 국제정책대학원 박사 과정이었다. 다만 마흔을 넘긴 워킹맘이면서도 공부를 이어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지 않았다고 했다.

ㅡ직장 생활과 공부가 잘 연결된 느낌인데요.

"맞아요. 사실 저는 박사를 마치더라도 학교에는 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당시만 해도 교수가 되는 루트는 대학 졸업하고 유학한 사람에게 우선권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내 나이로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중 마침 대학에서 교수 확보율을 중요하게 보면서 충원을 하더라고요."

​국내 여성 최초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이 된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가 팩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진 뒤 웃음짓고 있다. 
​국내 여성 최초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이 된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가 팩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진 뒤 웃음짓고 있다. 

조직행동→리더십 연구영역 확대
경영 오류 막기 위해 이사회 중요

2005년부터 국민대 경영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해온 이 교수는 전공 분야인 조직행동론을 발전시켜 리더십과 청년 및 여성문제 등으로 연구 영역을 넓혔다. 경영자의 리더십이 조직의 운명을 결정하며, 이를 위해선 국내 기업도 이사회의 선진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지론이었다.

리더십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한 사례는 흔하다. 하지만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실패가 반복된다는 것. 삼성전자가 스마트폰를 시작하던 때 LG전자는 전략을 거꾸로 세우는 바람에 휴대폰 사업 26년 만인 지난해 철수해야 했다. CEO가 과감한 결단을 하지 못하고 망설인 것이 이유였다. LG는 미래전략 부서를 뒤늦게 발족했지만 약 5조원에 달하는 누적적자를 기록하며 쓸쓸히 퇴장했다. 

이은형 교수는 이와 관련 "기업 현장에선 의사결정권자가 인식(conception)의 오류를 범할 때가 상당히 많다"면서 "언제든 자신이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CEO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학생들에게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내 기업은 괜찮을 것이고 상대 기업은 뭔가 오류를 범해서 잘못 될 것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실패의 원인이 된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제가 SC제일은행에서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그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선진적인 기업문화가 잘 정착돼 있었다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ㅡSC제일은행 지배구조가 어떤 점이 달라서인가요?

"제가 다른 기업에서의 사외이사 경험이 있고 또 다른 사외이사분들로부터 얘기를 많이 듣거든요. 그런데 사외이사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열심히 알려주는 회사는 많지 않아요. 이사회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겁니다."

금융은 이 교수의 전공분야가 아니었다. 그러나 SC제일은행은 전략적 리더십과 조직 행동 부문에서의 그의 전문성을 보고 2016년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영입했다. 

"요즘은 한국도 달라지고 있지만 외국 기업은 이사회 기능을 매우 중시해요. 보드 믹스(Board Mix)란 표현이 있거든요. 믹스는 다양성과 전문성을 의미하죠.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제가 좀 기여를 할 수 있어요."

국내 금융사는 남성 중심 문화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교수에 따르면 SC제일은행은 영국에서부터 다양성과 포용성(D&I, Diversity & Inclusion)을 전략 지표로 삼아오고 있었다. 그 결과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선정하는 우수기업 부문에서 2년연속 전체 대상을 수상했다. 

국내 여성 최초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이 된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가 팩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팩트경제신문DB
국내 여성 최초로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이 된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가 팩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팩트경제신문DB

청년·여성 위한 지속적 저술 활동
"워킹맘들은 나쁜 엄마가 아니야"

이은형 교수는 지난 2019년 1월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앳워크)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트레바리 1세대로 직접 청년들과 공부 모임을 가지며 그들로부터 느낀 바를 경영 전략에 녹여 담았다.

또 최근엔 '사실은 야망을 가진 당신에게'(김영사)를 저술해 여성들의 리더로서의 열망을 북돋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교수는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사회과학서이지만 경험이 녹아난 부분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주5일 없이 월화수목금금이 일상이었던 어느날 아이가 열이 심해 응급실에 갔는데 오전 출근할 시간이 됐어요. 제가 막 안절부절하니 아이가 그걸 보며 '엄마 회사 가세요. 저는 괜찮아요' 하는데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를거에요."

당시 누구라도 '넌 나쁜 엄마가 아니야'라고 이야기 좀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여기저기서 오히려 야단을 맞았다고 회상했다. 그런 의미에서 '용기를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책을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상황을 전하며 웃음을 지었다. 

"엄마 괜찮아요. 출근하세요 하던 애가 결혼했고 지금은 며느리가 생겼어요. 며느리에게 저는 말해요. '너 누구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너 자신이기도 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줄게'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니까, 며느리는 왜 우냐고 물어보며 그걸 또 이해를 못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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