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 스윙 스테이트 노스캐롤라이나
NAFTA 이후 일자리 상실·슬럼화 진행
바이든 아프가니스탄 철수 등 겹악재
트럼프 '미국 재건' 메시지 부활 가능성

블루릿지 파크웨이 전경./픽사베이
블루릿지 파크웨이 전경./픽사베이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는 이웃한 버지니아주와 함께 동부 해안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라이트 형제가 세계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아우터 뱅크스 (Outer Banks) 해안선은 대서양을 바라보는 고운 백사장과 아름다운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에는 미국 동부의 백두대간에 해당하는 애팔래치안 산맥이 높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산맥의 한 줄기인 블루릿지 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는 높은 능선을 따라 2차선 도로를 건설해 750㎞가 넘는 검푸른 산악지대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드라이브 명소다.

그 동쪽으로 넓게 펼쳐진 구릉지와 평원에는 기름진 옥토가 자리 잡아 면화와 밀, 각종 과일과 신선한 육류가 풍부하게 생산된다. 이런 경제적 번영을 기반으로 샬럿에는 일찍부터 은행업이 발달해 뱅크오브아메리카와 트루이스트를 포함한 미국 제2위의 금융센터가 형성됐다.

이 주의 북동부 지역에는 최고의 명문대인 듀크대(Duke)와 노스캘롤라이나대(UNC),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NCSU)를 연결한 삼각지대에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리서치 트라이앵글이 형성돼 전 세계로부터 우수한 인재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인구 천만이 넘어 전국 단위 선거의 향방을 좌우하곤 하는 노스캐롤라이나는 전형적인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이다. 바이든 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주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주에서 공화당 지지세가 거세지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가 공화당 주로 변화하면서 1980년대 이후 대선에서 공화당은 어렵지 않게 민주당에 승리할 수 있었다. 이처럼 노스캐롤라이나가 공화당으로 넘어간 배경에는 1994년 초 발효된 미국, 캐나다, 멕시코 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이 자리잡고 있다. 

나프타가 미국 정치와 사회에 끼친 영향은 넓고도 심대하다. 우선 1992년 대선에서 나프타를 강력하게 지지하던 조지 H.W. 부시 당시 대통령과 이를 강하게 반대하던 억만장자 로스 페로 (Ross Perot)가 보수층의 표를 나눠 가지면서, 총 43% 득표에 불과했던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에 당선되자 빌 클린턴은 나프타에 서명하고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간 무역장벽을 허물어 버렸다. 그는 공화당 주류가 주창하던 자유무역의 이점에 크게 공감한 정치인이었다. 리카도(Ricardo)의 비교우위론에 입각해 각국은 경쟁력 있는 상품의 생산에 특화하고, 경쟁력없는 상품은 생산을 포기하거나 생산기지를 외국으로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미국 경제 부흥의 중핵에 있던 제조업체들이 생산비가 싼 멕시코로 대거 공장을 이전했다. 노스캐롤라이나도 마찬가지였다. 값싼 면화를 기반으로 한 때 세계 섬유산업을 주도하던 노스캐롤라이나에는 이제 텅 빈 공장들만이 남아 스산하게 녹슬어 가고 있다.

클린턴은 나프타 발효에 만족하지 않았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에 대한 국제금융기구(IMF)의 구제금융을 무기로 한국을 비롯한 주요 신흥국들의 자본시장을 개방토록 압력을 가했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라면서 상품시장의 문턱을 낮추도록 압박했다.

더 나아가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대체할 ‘세계무역기구(WTO)’의 창설을 주도해 각국이 관세뿐만 아니라 각종 비관세 무역 장벽을 낮추도록 했다. 중국의 WTO 가입을 적극 지원하여 2001년 중국이 서방이 주도하던 국제 교역 서클의 중요한 일원이 되도록 했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픽사베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픽사베이

그러자 미국 내에 남아 있던 나머지 제조업체들도 상당 부분 앞을 다투어 중국으로 공장을 옮겨 갔다. 클린턴이 백악관에서 재임하던 1990년대 미국 내 대부분의 주에서 가장 큰 산업은 제조업이었지만 2010년 이후에는 병원이나 클리닉 등 헬스케어 산업으로 바뀌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생산비용이 보다 싼 지역을 찾아 1990년대 후반 방직공장이 청도 등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했다. 전자업체와 기타 제조업도 하나 둘 그 뒤를 따랐다. 이러한 흐름은 중국을 거쳐 베트남과 인도로 이어지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섬유업에 이어 미국 시장을 지배하던 가구산업이 고사했다. 중국산 저가 공세를 버티지 못했다. 오랜 기간 높은 임금과 복지 혜택을 제공하던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자 각종 사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타운은 슬럼화되고 마약도 퍼졌다.

그러나 월가의 투자자들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클린턴 재임 하에 S&P 500 지수는 세 배가 넘게 상승했다. 중국 등 해외에 투자한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주가지수는 몇 배가 더 올랐다. 공장이 떠난 시골 지역에는 한숨이 짙어 갔지만, 월가와 주요 언론매체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이들에 대하여 큰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러한 보통 미국인들의 마음을 채워준 유일한 정치인이 트럼프였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산간벽지와 농촌지역을 방문해 나프타를 강력히 비난하고 미국의 제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재임 중에는 나프타를 재편하고 중국과 WTO를 견제하는 한편, 미국에 대한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비록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미흡한 대처로 재선에 실패했지만 트럼프의 ‘미국 재건’ 메시지는 여전히 강력하게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온갖 악재가 겹치면서 바이든의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어 트럼프의 재등장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트럼프의 도전에 바이든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의 견해를 주로 반영해 국정을 운영했다가 사면초가에 빠지고 있다. 코로나 퇴치, 글로벌 공급망 개선, 인플레이션 완화 등 시급한 국정의 어느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수주 전 열린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완패하면서 민주당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과 민주당에게는 유일한 희망이 여전히 남아 있다. 만약 노조를 비롯한 워킹 클래스(working class)의 지지를 다시 모을 수 있다면 다음 선거에서 선전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바이든 국정 어젠다의 중심에 이들에 대한 강한 배려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제 워킹 클래스는 트럼프의 우군이 되고 있다. 친기업 성향의 공화당도 거대 플랫폼 기업을 견제하면서 워킹 클래스의 정당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은 환경과 소득 불균형 등 진보적 어젠다에만 천착하는 좌파적 정당으로 몰락할 수 있다. 미국 정치구도가 근본적 변화를 맞고 있다. 바이든은 워킹 클래스의 지지를 지키며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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