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되면 내놓는 '재고'로 비쳐져···노쇠·무능 정치력으로 국민들 외면
해답은 노회찬 가치 복원에···국민들 삶의 현장에 살아있는 정의여야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결과 발표 및 보고대회에서 대선 후보자로 선출된 심상정 의원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결과 발표 및 보고대회에서 대선 후보자로 선출된 심상정 의원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지난 10월 12일 정의당의 대선후보가 선출됐습니다. 진보정당의 간판스타 심상정 후보가 ‘또’ 뽑혔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악다구니 경선 ‘소음’에 가려져 정의당 대선후보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측면도 있지만 정의당도 한번쯤 여론이 시큰둥한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심상정의 ‘대권도전 4수’는 철 되면 내놓는, 먼지 덮인 ‘재고’처럼 비쳐집니다. 국민들이 ‘이번에 또 나왔어?’ 이상의 출마 동기를 발견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의당에 심각한 불행입니다. 36세 야당대표가 여의도를 휘젓고 다니고 있습니다. 진보담론의 구체적 실천을 기대하는 국민들에게 심상정의 ‘4수’는 왠지 옹색하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양당 카르텔정치에 꽉 막힌 소수정당의 생존투쟁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는 여론의 폭발점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엄연한 시청률게임입니다. 아무리 정의로운 가치로 무장했다고 해도 국민의 인기를 얻지 못하면 정당으로서의 존재 가치도 없습니다. 정의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지역구 1석, 비례대표 5석을 획득해 총 의석 6석을 기록했습니다. 20대 총선 성적과 같은 ‘횡보’에 그쳤고, 내부적으로 ‘참패’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2000년 1월 창당한 민주노동당(정의당의 전신)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총 10석을 차지하며 기성정치에 혜성과 같이 등장했지만 이제는 그저 그런 제 3당으로 전락해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지난 9월 정의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TV 토론회에서 이 문제가 집중 제기됐습니다. 대선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조국 사태’의 대응 실패를 지적했습니다. 조국 사태는 한 장관의 임명을 둘러싼 여야의 정쟁이 아니라 정치인의 도덕성과 공정성의 잣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 정의당은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협상을 위해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밀고 나갔습니다. 이런 ‘양다리 행태’는 당원들의 탈당 러시와 지지율 하락을 불렀습니다. 그 결과는 21대 총선의 6석 성적표로 나타났습니다. 

TV 토론회에서 이정미 전 대표는 정의당이 위기에 직면하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조국 사태 당시 대응을 꼽으면서 “조국 임명은 합당하지 않으니 임명을 철회하라고 국민들께 분명히 말씀을 드렸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이 외면을 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상정 전 대표도 조국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에 대해 “(조국 인준) 그 결정으로 당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고 청년들의 실망이 컸다. 그 결정은 분명한 오판이었다”고 밝혔습니다. 황순식 경기도당위원장 역시 “사퇴 부분에 대해서 분명한 말이 있어야 했고, 이후 조국 사태에 대한 정확한 성찰이 없었기 때문에 정의당의 혼란이 계속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의당 대선후보들의 ‘반성문’은 일견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내년 대선을 앞둔 단편적인 분석에 불과합니다. 20년 역사의 정의당은 눈에 보이지 않게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국 사태로 정의당에 내재돼 있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분출됐고, 그 민낯을 목도한 국민들은 싸늘하게 돌아섰습니다. 이번에도 정의당은 고육지책으로 심상정 전 대표를 다시 대선 출마대에 세웠습니다. 이는 정의당이 그동안 숱한 대전환의 기회를 놓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정의당은 정의와 진보의 관성에 갇혀 있었습니다. 배고픈 시민사회단체 출신이었던 정의당 사람들은 20년 제도권 정치의 탁류 속에서 그들 스스로 혼탁해진 것을 몰랐습니다. 2019년 조국 사태 때 보여준 정의당의 기회주의적 행보는 총선 때마다 몇 석씩 던져주는 국민들의 달콤한 금배지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조국 사태 때 한 네티즌은 “(민주당과의 정계개편을 통해)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리려고 병 속의 사탕을 움켜쥐고 놓지 못해 하나도 먹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렇게 정의당은 당의 의석 기득권 지키기에 매몰돼 정의와 공정에 대한 국민들의 보편적 가치를 무시하는 실수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심상정 전 대표로서는 민주당과의 정계개편 협상을 앞두고 정의당이 정치적 실리를 얻기 위해 다양한 선택지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다고 해도, 정의당의 진보정치에 대한 숙명적 가치는 현실정치의 유.불리를 넘어서는 자신들의 존재이유라는 것을 애써 무시했던 것입니다. 민주당이 정계개편 협상과정에서 던져줄 지도 모르는 한 뼘의 기득권을 지키려 하다가 총선에서 미니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심상정의 ‘대선도전 4수’ 또한 조국 사태 이후 정의당이 지키려고 하는 기득권의 한 조각에 불과합니다. 젊은 기수를 내세워 분위기를 일신해보려는 그 작은 정치 이벤트마저 시도하지 않는 정의당의 노쇠하고 무능한 정치력은 국민들로부터 냉정하게 외면 받고 있습니다.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결과 발표 및 보고대회에서 대선 후보자로 선출된 심상정 의원(왼쪽)이 이정미 전 대표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결과 발표 및 보고대회에서 대선 후보자로 선출된 심상정 의원(왼쪽)이 이정미 전 대표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정의당은 ‘노회찬의 죽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019년 4월 4일 jtbc 손석희 앵커는 “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추모했습니다. 노회찬의 죽음을 미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노회찬이 죽음과 갈음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것은 바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는 유서에서 공식 후원 절차를 밟지 않았던 문제의 돈 4000만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웬만한 얼굴두께로 정치를 하지 못한다’는 여의도 속설은 노회찬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의 의원직 사퇴가 민주당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도 여의도 기득권 정치의 낯이 얼마나 두꺼운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노회찬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했던 인간에 대한 가치를 정의당은 정의와 공정의 이름으로 다시 복원해야 합니다.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진보정당의 참 모습입니다. 관성에 갇혀 박제된 정의가 아닌 국민들의 삶의 현장에 살아 있는 정의여야 합니다. 심상정은 과연 그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대선 4수에 도전하는 것일까요? 대선에 네 번째 출마해서 정의당은 살아있다고 아무리 외쳐본들 국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그들만의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합니다. 

돈 있고 ‘빽’도 있는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수천억원을 해먹는 걸 그냥 지켜봐야만 하는 우리 사회는 분명 병들어 있습니다. 정치는 너무도 무기력합니다. 오히려 그 부패의 한가운데 들어앉아 먹이사슬을 이루며 기득권을 유지해 나갑니다. 세상에 도처에 널린 수많은 ‘그분’들은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심상정의 대선 4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돼야 합니다. 정치는 국민이 원하는 길을 영민하게 잘 좇아가는 과정입니다. 정치인은 그 길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은 국민들이 만든 공정에 대한 염원과 부패에 대한 처단의 길을 잘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유력주자로 부상했습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국가운영 능력과 구체적 성과에 대한 국민들의 갈구를 가장 잘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1위주자로 올라섰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네번째 대권에 도전하는 심상정 후보는 어떤 길을 따라가야 할까요? 그 해답은 바로 노회찬에게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노회찬 의원은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당 대표 수락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이 연설에서 매일 새벽 ‘6411번 버스’를 타고 아주머니들이 직장인이 있는 강남의 빌딩에 출근하지만, 이들은 한 달에 85만원을 받는 ‘투명인간’으로 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노 의원은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을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함께 가져가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왕 들어선 대선 길, 심상정 후보가 ‘6411번 승객’들의 손을 뜨겁게 잡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성기노 전 일요신문 정치부장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고 창원고와 한양대,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석사(언론학)를 마치고 일요신문과 에너지경제 등에서 주로 정치 분야를 취재했다. 모 정치인의 언론특보로도 활동하며 정치현장도 경험한 바 있다. 2016년 인터넷신문 피처링(www.featuring.co.kr)을 창간해서 대표를 맡고 있고 플러스정치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정치평론 활동도 하고 있다. 정치개혁과 시민주권정치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주소는 newser@naver.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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