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에 부도 맞은 '샐러리맨 신화' 대우그룹
적정 수준의 빚은 기업가치 극대화 기여

계산기와 숫자가 적힌 종이 이미지./픽사베이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은 빚에 얽힌 이야기이다. 안토니오는 한 친구의 구혼자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거금을 빌린다. 담보는 심장에 가까운 가슴살 1파운드였다. 그가 투자했던 상선이 돌아오면 돈을 회수하여 샤일록에게 갚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빚을 갚을 날짜까지 배는 항구로 돌아오지 않고 안토니오는 샤일록에 의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그때 샤일록을 좌절시키는 명판결이 내려진다. “계약서에 살만 적혀 있을 뿐이므로 살을 취하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선 아니 된다”. 

이 희극은 결국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지만 현실 사회로 돌아오면 숱한 비극이 빚으로 인해 발생한다. 대우그룹은 한때 대졸자들이 가장 선망하던 직장이었다. 삼성-현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3대 그룹으로 성장한다. 동구권 시장을 평정한 김우중 회장은 ‘20세기 칭기즈칸’이라는 신화를 쓴다. 그러나 대우는 외환위기로 외채 평가액이 급증하며 1999년 부도를 맞고 만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이머징마켓 국가의 금융위기도 대부분 빚으로 인해 발생한다. 달러 값이 쌀 때 외채를 끌어 썼다가 달러 환율과 금리가 오르면서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된다. 빚을 갚지 못하면 그 대가는 참혹하다. 대우그룹의 수십만 직원들은 그룹 해체와 함께 샐러리맨 신화의 꿈을 접어야 했다. 금융위기를 맞은 국가의 국민도 실직과 물가 급등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렇다면 빚은 항상 나쁘기만 한 것일까? 경영학의 기업재무이론은 기업이 성장할 사업 기회를 포착하면 빚을 내서 투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전설적 투자자 워런 버핏은 투자 결정을 할 때 기업의 ROE(자기자본이익율)를 가장 중요한 분석지표로 본다. 그런데 듀폰 항등식(DuPont Identity)은 같은 조건이라면 빚이 많은 회사의 ROE가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높음을 보여준다.

훌륭한 성장의 기회가 있음을 알면서도 위험에만 사로잡혀 투자 기회를 방기하는 경영자는 직무 태만을 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무능한 경영자가 초래하는 대리인 비용(agency cost)이라 부른다. 경영자는 대리인 비용을 최소화하고, 주주와 직원의 이익에 최대한 봉사하기 위해 위험을 활발하게 테이크하고 필요하다면 빚을 써야 한다.

같은 논리가 국가경영에도 적용된다. 경제를 성장시키고 생산성을 높여 미래세대가 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국가는 경제·사회·교육·의료 전반의 인프라에 활발히 투자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빚을 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빚이 과할 때 발생한다. 경영학에서는 기업이 빚을 내어 성장성 있는 사업에 투자하면 기업의 가치가 상승함을 인정하면서도, 어느 수준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이상으로 빚이 늘어나면 부도 위험도 또한 증가해 기업가치의 상승을 저해한다고 본다.

따라서, 한 회사 CFO(최고재무관리자)의 중요한 역할의 하나는 어느 정도의 빚이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최적의 수준(optimal level)이 되는지 밝혀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나라 빚이 적정한 수준인지 활발한 토론을 통해 결론을 찾아가는 것은 나라의 장래를 책임진 지도자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질이 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나라 빚이 적정한 수준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무슨 이유로 나라 빚은 늘어나는 것이지 그리고 나라 빚이 많을 경우 무슨 문제들이 생기는지를 먼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나라 빚을 일으키는 원죄는 재정적자에 있다. 세금으로 거두어들이는 조세 수입이 지출로 나가는 돈을 충당하지 못하게 되면 정부는 빚을 내어 그 적자를 메꿔야 한다. 그래서 재정적자가 누적되면 빚의 원금이 커지고 이 원금에 대한 이자도 불어나면서 시간이 갈수록 나라 빚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달러 이미지./픽사베이

이처럼 나라 빚이 늘어나면 정부의 국채 발행도 더불어 늘어난다. 채권시장에는 국채 공급이 넘치고 국채 값은 떨어진다.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 금리(채권수익률)가 오른다. 채권시장에 국채가 늘어날수록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채권시장에 들어설 자리는 좁아진다. 기업과 가계의 차입비용은 상승하고 투자와 소비는 감소한다. 부채의 늪에 빠져 경제는 가라앉는다.

이러한 국채의 부정적 효과를 줄이기 위해 중앙은행이 채권시장에 개입하게 된다. 돈을 찍어 중앙은행은 국채를 사들인다. 그로써 국채 가격의 하락은 저지되지만 이제는 실물에 비해 늘어난 돈의 양으로 인해 물가가 상승한다. 인플레이션 압박이 증가하고 금리는 결국 상승한다.

그런데 경제학계 일각에서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나라 빚이 증가하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반문한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양적완화로 미국의 나라 빚이 9조 달러에서 14조 달러로 늘어나고 총통화량(M2)도 8조 달러에서 12조 달러까지 증가했지만 심각한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인해 한 해 미국 재정적자가 3조 달러에 달하고 나라 빚도 5조 달러 이상 늘었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런데 이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돈이 연준과 은행 사이에만 돌면서 경제에 가하는 충격이 작았다. 중국 발 저가상품의 유입과 셰일가스 채굴로 인한 유가 하락도 물가 상승을 막아주었다.

그런데, 코로나19 판데믹에는 재정이 가계와 기업에 직접 투입됐다. 경제에 대한 충격이 보다 클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준이었지만 2020년에는 15%로 커졌다. 총통화량도 1년 새 5조 달러나 늘어났다.

경제에는 어떤 현상이 발생해도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반영이 된다. 이를 감안하여 통화주의 경제학자들은 통화량이 증가한 후 수년이 지나야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이 온다고 보았다. 

미국의 초대 연방정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나라 빚은 과도하지만 않으면 축복과 같은 것’이라 했다. 그런데 나라 빚이 축복이 되려면 과도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빚이 생산적으로 투자되어 경제성장을 견인해야 한다. 통화량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경제의 실질성장이 빨라야 인플레이션이 오지 않는 가운데 견실한 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복지 증진에 투자해야 한다. 경기가 좋고 세수가 늘어난다면 이를 이용해 복지를 증진해야 한다. 그러나 빚을 내야 한다면 소비적인 분야보다는 미래성장의 자양분이 될 생산적 인프라 구축에 써야 한다. 가계도 마찬가지이다. 가계 빚이 천문학적으로 치솟고 있는 지금 그 빚은 생산적으로 쓰이고 있는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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