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여백신 예약 관련 문의전화 폭주 "신중한 접근 필요"
서울시 내과의사회 "성급한 정책ㆍ지침 그만해야"
오접종 105건 발생, 대부분 접종대상 오류
위탁 의료기관 접종 가능 백신 늘어 현장 혼선 우려

27일 오전 광주 북구청에서 한 직원이 잔여 백신을 찾기 위해 스마트폰앱으로 예약시스템에 접속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오전 광주 북구청에서 한 직원이 잔여 백신을 찾기 위해 스마트폰앱으로 예약시스템에 접속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잔여 백신 접종 방식에 대한 의료계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카카오톡과 네이버를 통해 잔여 백신 예약을 하도록 했음에도 위탁 접종기관과 보건소에 전화 문의가 폭주해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최근 백신을 과다하게 투여하거나 오히려 적게 놓으면서 '오접종'에 대한 국민의 불안도 커지는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네이버와 카카오 앱을 이용해 희망자가 잔여 백신이 있는 의료기관을 실시간으로 찾아 백신을 맞을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어 4일부터는 전화 예약이 아닌 앱을 활용한 방식을 활용토록 했다.

특히 기존에 각 위탁 의료기관에서  60세 미만 접종 희망자들을 모아 만들어 둔 접종자 예비 명단은 당초 9일까지 유예 기간을 둔 뒤 10일부터 쓰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아직 예비명단의 예약자 중 백신을 맞지 못한 이들이 남아있다는 현장 의료기관의 요청에 따라 유예 기간을 12일까지 연장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이 방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7일 공식 홈페이지 입장문을 통해 백신 접종 현장 인력의 어려운 점을 전했다.

의협은 "앱을 통한 예약 방식은 오후 4~5시 즈음 앱에 신청한 사람에게만 결과 통보를 하는데 통보를 받지 않은 환자들은 예약 확인을 위해 의료 기관으로 전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 경우 전화 폭주 등 의료 기관의 행정 업무가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백신 위탁의료기관도 해당 예약 시스템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위탁의료기관들은 접종기관에 등록된 10명을 기준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병을 공급받아, 실제로는 백신 1병으로 11명에서 12명을 접종할 수 있어 1~2명을 집종기관에서 미리 신청된 예비명단을 이용하거나 당일 SNS에 올려 잔여백신 접종 희망자에 대해 접종해왔다.

하지만 예비명단을 이용하는 방식이 중단되고, SNS로만 사전예약이 가능해지면서 SNS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 접종률 제고를 통해 사망률을 낮추려는 정부의 의도와 전혀 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또한 백신 접종을 위해서는 최소 오후 5시까지 의료기관에 도착해야 하는 데 SNS를 이용한 방식의 경우 기존 전화 예약방식 보다 원거리 환자가 많고, 이에 퇴근 시간에 맞물릴 경우 근본적으로 접종 불가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오히려 백신 폐기량만 증가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현재 코로나19 백신 위탁의료기관들은 기존의 진료 업무를 평소처럼 시행하면서 동시에 백신 접종 업무를 병행하는 것인데, 이 경우 전화 폭주현상 등 의료기관의 행정업무 가중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4일, 전국 광역시·도의사회장 협의회는 "접종기관에서 가지고 있는 예비 명단은 접종기관 인근의 주민이 대다수이므로 카카오, 네이버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 오는 경우보다는 신속히 접종을 할 수 있고 교통 상황 등으로 내원치 못해 백신을 폐기하는 경우가 발생치 않을 것"이라며 예비명단과 SNS 예약을 병행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병원도 폭주하는 전화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지만 백신을 맞으려는 희망자도 하루 종일 네이버와 카카오를 들여다 보며 잔여 백신이 뜨는지를 확인해야 해 불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백신을 맞았다는 A씨는 "친구는 지난달 말에 가까운 동네 병원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뒤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바로 가서 맞았다"며 "나는 하루종일 네이버와 카카오에 잔여 백신이 뜨는 걸 지켜보느라 아무 일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내과의사회는 “질병청은 앞서 언급한 지침을 개정할 시 충분한 시간을 두고 보건소, 의료계와 함께 협의하면서 결정되고 시행돼야 하는데 전달도 되기 전 언론 보도가 먼저 돼 국민과 의료기관의 혼란이 극에 달했다”며 “질병청은 당장 성급한 정책 결정과 지침 개정을 멈추고, 집단면역을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 의료계와 긴밀하게 협의하고 협조할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하루에도 수십 번 전화 문의부터 일정 조율까지 다양한 민원이 빗발치는데, 행정업무 처리를 위해 예방접종 교육 동영상을 보고 수료증을 받은 임시 아르바이트 직원까지 동원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또 정상적인 병원 업무를 방해할 정도로 접종 문의 전화가 폭주하는 가운데, 직원들은 업무과다를 토로하면서 사표를 내는 경우도 다반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위탁의료기관의 한 원장은 <팩트경제신문>과 통화에 "모든 민원이 일선 병의원으로 몰릴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놔서 직원들도 몸과 마음이 다 지쳐있다"면서 "지금은 다른 업무보다 전화받고 상담하는게 힘들어서 직원들 눈치까지 살핀다. 그 와중에 잔여백신을 맞겠다고 무작정 찾아와서 기다리는 인원도 다 받아내야 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의료기관 원장도 <팩트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부족한 백신 물량도 문제인데, 정부에선 얀센 잔여 백신도 같이 활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큰 문제를 간과한 것 같다"면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으로 알고 온 인원에게, 갑자기 얀센 백신으로 바꿔 놔준다고 하면 누가 가만히 수긍하겠나"고 했다.

이어 "이런 상황을 대국민 홍보를 통해 정확히 알려야 하는데 쉬쉬하는 상황이다보니 결국 모든 민원은 접종 병원이 고스란히 떠안는다"며 "현재 접종 병원은 하루에도 백신 접종부터 일정 조율까지 수십통의 민원 전화를 다받아 내고 있는 터라 직원들 모두가 버거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일각에선 1차 접종 이후, 하반기 2차 접종에는 불안정한 백신 수급 문제로 인해 더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고한성 공보이사는 "일단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1바이알당 10명이 기본인데, 잔여백신 등록자가 1차로 맞아버리면 8월에 예약이 자동으로 된다"며 "그때는 지금보다 1.2배 가량의 백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차 접종때는 잔여백신 개념이 없어질 수도 있다. 백신 수급 불안정한데 최대한 뽑아쓰는 최소잔여형(LDS) 주사기를 이용해 1바이알당 12회가 기정사실화된 이유"이라면서 "지금도 관할 보건소에 수 차례씩 방문 수령을 해야 하는 바쁜 상황인데 정부가 1cc LDS 주사기 보급에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늘고있는 접종 속도에 '오접종'도 말썽

이처럼 정부가 '상반기 1300만명 코로나19 백신 접종'이라는 목표 달성을 앞두고 속도전을 펼치는 가운데, 오접종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15일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 추진단에 따르면 이달 13일 0시까지 1~2차 누적 예방접종 1479만건 중 접종오류로 신고된 사례는 105건을 기록했다. 사례별로 분류하면 접종 대상자 착오 90건(85.7%), 조기 접종 10건(9.5%), 임의 용량 접종 5건(4.8%) 순이다.

이러한 오류는 접종 위탁 의료기관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일반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일반적으로 주사실이 1개, 주사를 놓는 간호인력이 1~2명 수준이다.

현재 위탁의료기관 등에서 접종접수·예진·접종시 접종 대상자, 백신종류, 접종용량을 단계별로 확인해 접종하고 있지만, 인력이 많지 않은 특성상 1~2명이 여러 단계를 한꺼번에 맡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난 11일 밤 전북 부안군 보건소에서 얀센 백신을 맞은 30대는 정량보다 5~6배 많은 백신을 맞아 고열에 시달렸다. 인천 남동구 소재 한 병원에서는 일부 접종자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투여 기준의 절반 정도만 투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진주에선 지난 11일 얀센 백신 예방접종을 예약한 50대에게 실수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투여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부산의 한 병원에서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대상에서 제외된 20대가 잔여 백신을 예약해 아스트라제네카를 투여받았다.

시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백신 오접종이 발생한 병원 정보를 공유하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대는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접종 금지이니 맞기 전 어떤 백신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는 댓글이 공유되기도 했다.

정은경 추진단장은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해 의료계, 지자체와 협력해 현장 점검, 교육, 오접종 사례에 대한 조사와 대책 등을 마련하겠다. 접종 현장 오류를 최소화하고 안전 접종이 되도록 의료계와 협력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다양한 종류의 백신이 공급되면서 보관과 용량, 접종연령대가 제각각이라 현장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백신별로 보관을 따로하고, 접종법에 대한 재교육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은미 이화여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화이자 백신은 희석을 해야 하는데 흔들면 안 되는 등 백신별로 접종방법이 다르다"며 "의료진이 바뀔 때마다 재교육을 해야 한다. 접종 공간에 백신별 용량을 안내하는 포스터를 붙여 일반인들도 알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방역당국은 향후 의료계와 협의해 '안전접종 민관대책협의회'(가칭)를 구성해 '오접종 최소화를 위한 실행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오접종 사례가 발생하면 민관 합동으로 조사하면서 재발방지 조치를 권고한다. 예방접종 후엔 이상반응 신고-보고 체계를 강화한다.

또 오접종이 다시 일어날 우려가 있거나 위탁 접종이 어려운 의료기관의 경우 위탁 계약을 해지할 방침이다.

서울 금천구의 한 내과의원 원장은 <팩트경제신문>과 통화에 "앞으로  화이자 백신 접종도 병·의원에서 할 수 있도록 안내하게 되면 접종 속도야 빨라지겠지만, 혹시 모를 오 ·접종 관리방안도 함께 병행돼야 한다"며 "현장에서 잘 관리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체계는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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